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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플 견적을 주고받다 보면 생각지 못한 항목이 한 줄 끼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철형비입니다. 가죽값이나 봉제비는 가방 한 개마다 붙는 비용이라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철형비는 한 번 내고 끝나는 돈이라 처음 보면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한 줄이 소량으로 가방을 만드는 분들에게 유독 큰 부담이 되는 이유가 있어서, 오늘은 철형이 무엇이고 왜 수량이 적을수록 부담이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도무송이라 부르던 틀, 가방 공장에서는 철형이라 부른다

    도무송이라는 말은 원래 인쇄나 포장 쪽에서 많이 쓰는 현장 용어입니다. 합판에 칼 홈을 파고 강철 칼날을 심은 틀로 소재를 찍어서 자르는 가공을 뜻하는데, 한 자료에 따르면 이 이름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고 다른 나라에서는 다이 커팅이라고 부릅니다.

     

    어원은 19세기 영국의 톰슨이 만든 재단기에서 왔다고 합니다. 틀을 만들 때는 도안 파일을 바탕으로 CAD와 레이저로 정밀하게 가공하고 조립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곧 품질이라고 합니다(박스마스터).

     

    가방 업계에서는 같은 원리의 틀을 보통 철형이라고 부르고, 오늘 이야기하는 금형도 바로 이 철형입니다. 여기서 샘플과 양산이 갈립니다. 샘플을 만들 때는 손재단으로 합니다. 샘플은 한 개만 만들고, 만들면서 패턴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틀을 만들어봐야 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방 공장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한 장 한 장 자르는 경우에도 철형을 만들어 찍어내는 쪽이 훨씬 정확하고 일을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칼로 선을 따라 자르면 같은 가방인데도 부품 크기가 미세하게 달라지기 쉽고, 하루 종일 자르다 보면 손의 컨디션도 결과에 섞여 들어갑니다.

     

    철형은 누가 언제 찍어도 같은 모양이 나옵니다. 가죽은 흠집이나 결 방향을 눈으로 보며 철형을 놓을 자리를 정해야 하니, 사람의 눈과 틀의 정확성이 함께 일하는 셈입니다.

     

    저는 샘플은 손으로, 양산은 틀로 하는 이 분업이 가방 생산의 기본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샘플과 양산품의 부품 편차를 줄여주는 것도 이 철형이 하는 일입니다.

    철형비 40만~60만 원, 개당 단가에 얹히는 계산

    철형 비용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틀을 처음 만드는 초도 비용은 한 번만 발생하고, 실제로 찍어내는 가공비는 수량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박스마스터). 가방 철형비는 가방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이 40만 원에서 60만 원대입니다. 이 금액은 어디까지나 기본값이고, 디테일이많을수록 사이즈크기가클수록 가격은올라갑니다.

     

    디테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잘라내야 하는 패턴 조각의 수가 많다는 뜻이고, 조각마다 틀이 필요하니 철형 수량이 늘어나 총금액이 함께 오르기 때문입니다. 겉에서 보면 비슷한 크기의 가방인데도 주머니나 덧댐, 장식 조각이 많은 모델은 철형비가 훨씬 높게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소량이 불리한 이유가 나옵니다. 한 번 내는 돈을 몇 개로 나누느냐에 따라 개당 부담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계산이 쉽도록 기본값의 중간인 50만 원으로 가정해보겠습니다.

     

    100개를 만들면 개당 5,000원이 얹히고, 1,000개를 만들면 개당 500원이 얹힙니다.가방 한 개 원가에서 5,000원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디테일이 많아 철형비가 이보다 올라가는 모델이라면 같은 100개에서도 개당 부담이 더 커집니다.

     

    수량을 열 배로 늘리면 같은 철형비가 열 분의 일로 줄어드는 셈이라, 대량 주문일수록 철형비는 눈에 띄지 않게 녹아듭니다. 참고로 해외의 한 가죽 맞춤 절단 금형 업체는 금형이 대략 100달러에서 500달러 이상이고 100개 이상 주문하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안내합니다(The Leather Guy).

     

    나라와 방식이 다르니 금액이 같지는 않지만, 틀이 수량을 전제로 한 도구라는 점은 똑같이 읽힙니다. 더 조심해야 할 점은 철형이 한 번 만들어지면 고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품 크기가 1센티미터만 바뀌어도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패턴이 확정되기 전에 철형부터 만드는 일을 가장 경계합니다. 샘플이 한 번이라도 더 오갈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서둘러 철형을 만들면, 그 돈은 그대로 버리는 돈이 됩니다.

    소량 생산자는 철형을 이렇게 다루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소량으로 가방을 만드는 분들은 철형비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제가 현장에서 쓰는 기준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샘플 단계에서는 철형을 만들지 않습니다. 샘플은 손재단으로 충분하고, 큐시 단계에서 형태가 확정된 뒤에 철형을 제작해야 안전합니다.

     

    둘째, 견적서를 받을 때 철형비가 개당 단가에 섞여 있는지 따로 표시돼 있는지 확인합니다. 따로 분리돼 있어야 재주문 때 철형비가 또 청구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한 번 만든 철형은 같은 모델을 다시 찍을 때 쓸 수 있으니, 어디에 얼마나 보관되는지를 공장과 미리 정해둡니다. 만들어놓고 보관 위치를 몰라 다시 제작하는 일도 의외로 자주 벌어집니다.

     

    넷째, 여러 모델에서 같은 크기로 쓸 수 있는 부품은 처음부터 공통 규격으로 설계해서 철형 하나를 나눠 쓸 수 있게 합니다. 철형비를 나눌 개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개당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소량이라 철형비가 단가에 크게 얹히는 상황이라면, 수량을 조금 늘려 발주할 수 있는지, 부품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단순화할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봅니다. 철형 제작을 맡기기 전에는 패턴 파일이 실제 크기 그대로 정확한지 한 번 더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종이로 먼저 오려서 부품끼리 맞는지 보시길 권합니다.

     

    도안이 모호하면 틀이 엉뚱하게 나오고, 그 비용은 주문한 쪽이 떠안게 됩니다. 저는 철형은 만드는 순간보다 만들기 전의 준비가 비용을 좌우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철형비를 아끼겠다고 양산에서까지 손재단을 고집하는 선택은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처음 몇 개는 아낀 것처럼 보여도 부품 크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 편차가 봉제 단계에서 맞지 않는 불량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불량으로 다시 만드는 비용이 철형비보다 커지는 일은 현장에서 흔합니다. 그래서 철형비는 줄일 방법을 찾기보다 어느 모델에 투자할지를 고르는 문제라고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정리하면 철형은 수량이 충분할 때 가장 정직하게 일하는 도구이고, 수량이 적을 때는 한 번에 큰 돈이 먼저 나가는 도구입니다. 그래도 공장이 철형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확하고 빠르고, 몇 번을 찍어도 같은 모양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를 모르고 견적서의 한 줄을 지나치면 나중에 개당 원가가 계획과 어긋나는 걸 보게 됩니다. 반대로 구조를 알고 나면 철형비는 두려워할 항목이 아니라 품질을 위해 미리 치르는 비용이 됩니다. 만드는 일을 오래 해보니, 비싼 도구를 가진 쪽이 아니라 도구를 쓸 때를 아는 쪽이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