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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방을 오랫동안 생산하다 보면 수많은 고객과 상담하고 A/S 수리품을 접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겉가죽은 말끔한데 내부를 열어보는 순간 탄식이 절로 나오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안감 전체에 지저분하게 먹물이 번진 것처럼 거무스름한 얼룩이 남았거나, 가방 밑바닥 뼈대가 눅눅하게 꺼져서 본래의 예쁜 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우입니다. 이유를 여쭤보면 열에 아홉은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집에서 장롱에 넣어둘 때 습기 차지 말라고 신문지를 빵빵하게 뭉쳐 넣었어요.'

     

    주변에서 흔히 신문지가 습기를 잘 빨아들이고 각을 잡아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따라 하신 것입니다. 사실 신문지 채우기 자체가 완전히 틀린 방법은 아닙니다. 종이 특유의 수분 흡수력과 볼륨을 지탱해 주는 물리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방의 안감(우라) 색상과 보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채워 넣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현장에서 제품을 뜯고 꿰매온 실무자의 눈으로 왜 밝은 안감에 신문지가 독이 되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신문지를 요령껏 써야 하는지 그 현실적인 관리 기준을 짚어드리겠습니다.

    1. 밝은 안감에는 잉크 이염, 어두운 안감은 신문지도 훌륭한 대안

    신문지를 가방 안에 채워 넣을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안감(현장 용어로 우라, Lining)의 색상과 재질입니다. 신문 인쇄에 들어가는 윤전 잉크는 카본 블랙과 미네랄 오일, 합성 바인더를 섞어 만듭니다.

     

    겉으로는 바짝 마른 것처럼 보여도 가방 속에 꽉 채워 닫아두면 내부 압력과 주변 습기 때문에 잉크 입자가 섬유 표면으로 묻어나는 잉크 전이(Ink Migration) 현상이 쉽게 일어납니다.

     

    특히 여성용 토트백이나 명품 가방에 자주 쓰이는 밝은 베이지, 아이보리, 연핑크 톤의 패브릭이나 부드러운 샤무드(인조 스웨이드) 안감은 이 잉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입니다. 신문지 글자나 사진 자국이 안감에 도장 찍히듯 그대로 배어버리면 화학 약품으로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아 결국 안감을 다 뜯어내고 교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방 안감이 블랙, 다크 네이비, 차콜처럼 아주 어두운 색상의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우라로 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어두운 우라는 신문지 윤전 잉크가 미세하게 묻어난다 하더라도 육안으로 티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신문지 특유의 성긴 종이 조직은 초기 수분을 흡수하는 힘이 뛰어나고 구겼을 때 뭉쳐지는 지지력도 훌륭합니다.

     

    따라서 집에 깨끗한 백색 습자지나 완충재가 마땅치 않다면, 어두운 우라가 적용된 가방에는 신문지를 알맞게 구겨 넣어 볼륨을 세워주는 것이 흐물거리게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만약 밝은 안감 가방에 꼭 신문지를 쓰고 싶다면 신문지를 먼저 깨끗한 비닐 지퍼백이나 세탁소 흰색 면 천으로 한 번 감싼 뒤 안쪽에 넣어주는 것도 현장에서 자주 쓰는 좋은 요령입니다.

    2. 습기 머금은 종이가 부르는 곰팡이와 내부 보강재의 변형

    신문지가 초기 수분을 잘 흡수하는 것은 맞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흡수한 습기를 스스로 밖으로 뿜어내는 통기성 배출능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건조한 계절에는 가방 속 미세 습기를 빨아들여 형태를 유지해 주지만, 습도가 80%를 넘나드는 우리나라 한여름 장마철에는 신문지 자체가 수분을 가득 머금은 젖은 솜뭉치 상태로 변해버립니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붙박이장이나 드레스룸 안에서 축축해진 신문지가 가방 안쪽 면에 몇 달 동안 밀착되어 있으면 그곳은 곰팡이 포자가 자라기에 가장 완벽한 온상이 됩니다. 가죽 겉면의 곰팡이는 닦아내기라도 하지만, 안감 섬유와 가죽 심재 틈새 깊숙이 핀 곰팡이는 퀴퀴한 악취를 남겨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방 속 뼈대, 즉 보강재(현장 용어로 싱)의 변형입니다. 가방이 반듯하게 각을 잡고 서 있게 하려면 가죽 뒷면에 LB(가죽 분쇄 보강재)나 텍스론(종이 압축 보강재) 같은 심재를 본드로 붙여 넣습니다.

     

    이 보강재들은 기본적으로 종이나 섬유질 기반이기 때문에 눅눅한 습기에 장기간 노출되면 결합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축축한 신문지가 가방 내부를 짓누르고 있으면 이 보강재들이 습기를 먹고 흐물거리며 주저앉아 버립니다.

     

    나중에 날이 개어 건조되더라도 이미 뒤틀린 보강재는 딱딱하게 굳어 바닥이 울룩불룩해지고 모서리가 꺾입니다. 신문지를 사용할 때는 주기적으로 꺼내어 종이가 눅눅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환기해 주는 관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3.  제안하는 안전한 충전재와 올바른 보관법

    가방의 본래 실루엣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이염 걱정 없이 장기 보관하려면 상황에 맞는 충전재를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안전하고 이상적인 것은 인쇄가 들어가지 않은 무인쇄 백색 습자지입니다.

     

    새 가방을 구입했을 때 안쪽에 바스락거리며 채워져 있는 얇은 하얀 종이입니다. 잉크가 전혀 묻어나지 않아 밝은 안감에도 안심하고 쓸 수 있고 통기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만약 습자지가 없다면 택배 박스에 들어있는 공기 완충재(에어캡/뽁뽁이)나 깨끗한 순면 티셔츠, 안 쓰는 더스트백을 가방 안에 채워 넣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특히 에어캡은 수분을 머금지 않아 습기로 인한 곰팡이 걱정이 없고 가벼우면서도 탄성이 좋아 가방의 형태를 복원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충전재를 넣을 때의 요령은 원래 가방 부피의 80~90% 정도로 자연스럽게 채우는 것입니다. 각을 살리겠다고 신문지든 에어캡이든 터질 듯이 꽉꽉 채워 넣으면 지퍼 레일이나 핸들 연결 부위(모모)의 가죽이 불필요하게 늘어나 가방이 망가집니다.

     

    보관할 때는 비닐봉지에 밀봉하면 습기가 갇혀 곰팡이가 피므로 반드시 바람이 통하는 순면 더스트백에 넣어야 합니다. 가죽 제품의 올바른 취급 요령과 습기제거제 사용 주의사항 등은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 피해 예방 가이드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실리카겔 같은 화학 방습제는 가죽에 직접 닿으면 가죽 표면의 필수 수분과 유분까지 완전히 빨아들여 가죽을 굳고 갈라지게 만드니 절대 가죽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년에 두세 번 환절기마다 가방을 꺼내 그늘진 곳에서 바람을 쐬어주는 작은 정성이면 소중한 가방을 10년 넘게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