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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품질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소가죽이라도 어떤 원피를 사용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무두질했는지, 염색과 표면 가공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촉감과 내구성, 가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가방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저도 가죽의 색과 촉감만 좋으면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산을 거듭할수록 눈에 보이는 표면보다 그 가죽이 만들어진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공장에서 직접 겪었던 문제들을 떠올리며, 원피가 가방용 가죽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원피 선별부터 무두질까지, 썩기 쉬운 원피가 소재로 바뀌는 과정
가죽의 시작은 소나 양, 염소 등의 동물에서 얻은 원피입니다. 원피는 가공되지 않은 생가죽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빠르게 부패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소금을 사용하는 염장 처리를 하거나 저온 상태로 보관한 뒤 제혁공장으로 운반합니다.
공장에 도착한 원피는 크기와 두께, 주름, 상처, 벌레 자국 등에 따라 분류됩니다. 동물이 살아 있을 때 생긴 상처나 목 부분의 깊은 주름은 표면 가공을 한 뒤에도 남을 수 있어 원피의 상태가 가죽의 등급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선별된 원피는 먼저 물에 담가 소금과 피, 흙 등의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이 과정을 수적, 영어로는 ‘Soaking’이라고 합니다. 이후 털과 표피를 제거하기 위한 석회 처리와 안쪽에 붙어 있는 지방과 살점을 제거하는 제육 작업을 거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털을 벗겨내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이때 약품의 농도와 작업시간이 적절하지 않으면 가죽 섬유가 손상되거나 완성 후 촉감이 지나치게 늘어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진행되는 핵심 공정이 무두질( 무두질이란 쉽게 썩고 딱딱해지는 동물의 원피를 약품이나 식물성 탄닌으로 처리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죽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입니다.
무두질은 부패하기 쉬운 원피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안정된 가죽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대표적으로 크롬염( 크롬 성분이 포함된 화합물의 종류를 말합니다)을 사용하는 크롬 무두질과 식물에서 추출한 탄닌을 사용하는 베지터블 무두질이 있습니다.
크롬 무두질 가죽은 비교적 부드럽고 가벼우며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기 좋아 패션 가방과 신발에 널리 사용됩니다. 베지터블 가죽은 조직이 비교적 탄탄하고 사용할수록 색이 짙어지는 에이징이 나타나 지갑과 벨트, 형태를 잡아야 하는 가방에 많이 사용됩니다.
제가 초기에 가죽 가방을 생산할 때는 “베지터블 가죽이 더 고급스럽다”는 말만 믿고 디자인에 적용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가방은 제가 예상한 것보다 무거웠고, 접히는 부분에는 주름이 크게 생겼습니다.
가죽 자체가 나빴던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처져야 하는 디자인과 단단한 가죽의 특성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무두질 방식의 이름보다 제품의 구조와 용도에 맞는 가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염색과 두께 조절, 같은 소가죽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이유
무두질( 쉽게 썩고 딱딱해지는 동물의 원피를 약품이나 식물성 탄닌으로 처리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죽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을 마친 가죽은 제품의 용도에 맞게 두께를 조절합니다.
소가죽 원피는 가방에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두껍기 때문에 기계로 층을 나누는 분할 작업과 뒷면을 깎아 두께를 일정하게 만드는 셰이빙 작업을 거칩니다. 바깥쪽 표면이 남아 있는 층은 은면가죽으로 사용하고, 아래쪽의 스플릿층은 스웨이드로 가공하거나 표면에 코팅을 입혀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죽의 두께는 가방의 형태와 무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같은 가죽이라도 몸판에는 1.2mm, 손잡이나 접히는 부분에는 그보다 얇은 두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실제 가방 공장에서는 전체 가죽을 한 가지 두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위별로 다시 피할 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손잡이의 접히는 부분이나 지퍼 주변이 너무 두꺼우면 봉제가 고르게 나오지 않고, 반대로 지나치게 얇으면 사용하면서 가죽이 늘어나거나 형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두께를 정리한 가죽은 재무두질과 염색, 가지 작업을 거칩니다. 재무두질은 가죽의 단단함과 충만감, 탄성을 조절하는 과정이고, 가지 작업은 가죽에 필요한 유분을 공급해 건조 후에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과정입니다.
같은 원피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약품과 오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죽의 촉감과 무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드럽게 흐르는 가방에 적합한 가죽이 될 수도 있고, 형태가 단단하게 유지되는 서류가방용 가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겪은 문제는 색상 차이였습니다. 샘플 제작 때 승인한 베이지색 가죽과 본생산용 가죽의 색상이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공장에서는 같은 색상번호라고 했지만 여러 장을 펼쳐 놓으니 어떤 가죽은 붉은 기가 돌고, 어떤 가죽은 노란 기가 강했습니다.
천연가죽은 원피마다 조직과 수분 흡수 정도가 다르고, 염료의 배합이나 건조 환경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산 로트가 바뀌면 색상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번은 본생산을 시작한 뒤 앞판과 뒤판의 색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해 이미 재단한 가죽을 다시 분류한 적도 있습니다. 같은 가방 안에서 색상 차이가 보이지 않도록 한 장의 가죽에서 주요 몸판을 함께 재단하고, 비슷한 색상끼리 묶어 생산해야 했습니다.
이후에는 가죽업체가 보내준 작은 스와치만 확인하지 않고, 본생산 가죽 여러 장을 자연광과 실내조명 아래에서 함께 펼쳐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작은 색상 차이가 완제품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표면 가공과 품질검사, 완성된 가죽에서 반드시 확인하는 것
염색과 건조를 마친 가죽은 원하는 표정과 기능을 만들기 위한 피니싱 공정을 거칩니다. 염료나 안료, 수지와 보호제를 표면에 바르고 열과 압력을 사용해 색상과 광택을 맞춥니다. 천연 모공과 원피의 자연스러운 특징을 살린 아닐린 가죽이 있는 반면, 안료와 코팅으로 색상을 균일하게 만들고 상처를 가린 피그먼트 가죽도 있습니다.
프레스판으로 일정한 무늬를 찍는 엠보싱, 표면을 가볍게 갈아 보송한 촉감을 만드는 누벅 가공도 이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소비자는 표면이 깨끗하고 균일한 가죽을 더 좋은 가죽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흠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높은 등급의 원피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표면을 많이 갈아내고 두꺼운 안료로 덮으면 상처와 모공을 감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름과 모공이 조금 보이는 가죽은 원피의 자연스러운 특징을 살리기 위해 코팅을 얇게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죽의 품질은 표면이 매끈한지만 볼 것이 아니라 촉감과 유연성, 코팅의 접착력, 마찰과 이염 가능성까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저도 예전에 촉감이 부드럽고 색상이 아름다운 가죽을 선택했다가 제품을 완성한 뒤 곤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진한 색 가죽을 마른 흰색 천으로 문질렀더니 색이 묻어 나왔고, 밝은 색 의류와 함께 착용하면 이염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샘플의 외관만 보고 생산을 진행했다면 판매 후 소비자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 이후로 진한 색 가죽은 마른 천과 젖은 천으로 각각 문질러 보고, 밝은 원단과 맞닿는 부분은 더 세심하게 확인합니다.
가죽 표면을 가볍게 접어 코팅이 갈라지는지 보고, 손톱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살짝 긁어 표면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지도 확인합니다. 손잡이처럼 반복해서 구부러지는 부위에는 단단한 가죽보다 복원력이 좋은 가죽이 적합한지 살펴봅니다.
가방을 완성한 뒤에는 에지 페인트, 즉 기리매가 가죽의 유연성을 따라 움직이는 지도 봐야 합니다. 가죽은 부드러운데 기리매 도료가 지나치게 단단하면 사용 중 단면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죽을 고르는 일은 가격표나 원산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에 사용할 것인지 정한 뒤 두께와 촉감, 무게, 색상 견뢰도, 표면 내구성을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같은 가죽도 부드러운 숄더백에는 잘 맞지만 각을 세워야 하는 토트백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좋은 가죽이란 무조건 비싼 가죽이 아니라 디자인과 사용 목적에 가장 잘 맞는 가죽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죽을 알면 완성된 가방의 품질이 보입니다
가죽 한 장은 원피 선별, 세척, 탈모, 무두질, 분할, 두께 조절, 염색, 건조와 표면 가공을 거쳐 완성됩니다. 우리가 매장에서 보는 가죽은 이미 수많은 사람의 손과 기술을 통과한 결과물입니다.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가죽도 어떤 공정을 거쳤느냐에 따라 몇 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짧은 시간 안에 표면이 벗겨지거나 색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26년 동안 가방을 만들면서 저는 가죽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문제를 만났습니다. 색상이 맞으면 두께가 달랐고, 촉감이 좋으면 이염을 확인해야 했으며, 표면이 깨끗하면 코팅의 내구성을 살펴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가죽을 만나면 이름이나 설명만 믿지 않고 직접 접고, 문지르고, 재단하고, 샘플을 만들어 확인합니다.
가죽은 자연에서 얻은 소재이기 때문에 완전히 똑같은 두 장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것을 단점이라기보다 가죽이 가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연스러운 차이와 품질 불량을 구분하는 것은 생산자의 책임입니다. 가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면 제품을 고를 때도 단순히 “천연가죽인가?”만 묻지 않고, 이 가죽이 가방의 용도에 적합한지까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가죽 가방을 고르는 가장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