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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사과를 살 때도 상자마다 등급이 붙어 있죠. 흠집 하나 없는 사과와 살짝 멍든 사과는 같은 나무에서 열렸어도 가격이 다릅니다. 가죽도 똑같습니다.
같은 소에서 나온 가죽이라도 어느 부위인지, 표면에 상처가 몇 개인지에 따라 등급이 갈리고, 그 등급이 결국 가방 가격까지 결정합니다. 오늘은 이 가죽 등급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나뉘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죽 등급, 국제적으로는 이렇게 나눕니다
가죽 업계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등급은 크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가장 위 등급인 풀그레인 레더( Full-grain leather )는 소가죽 표면을 전혀 갈아내지 않고 원래 결과 모공 무늬를 그대로 살린 가죽입니다.
그다음이 탑그레인 레더 (Top-grain leathe) 인데, 표면을 아주 살짝만 다듬어 흠집을 없앤 가죽입니다. 그 아래로 코렉티드 그레인 레더( Corrected-grain leather )는 흠집이 많아 표면을 더 깎아내고 인공적으로 무늬를 찍어 넣은 가죽이고, 가장 아래인 스플릿 레더( Split leather )는 가죽을 여러 겹으로 얇게 갈랐을 때 가장 안쪽, 그러니까 겉면이 아닌 속살 부분만 쓴 가죽입니다.
국내 레더 브랜드의 설명 자료를 보면 이 네 단계 분류가 가죽의 종류와 가공 방식에 따라 국제적으로 널리 쓰인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POV).
쉽게 말하면 사과 껍질에 상처가 없어서 그대로 파는 것과, 상처 부분만 살짝 깎아 파는 것, 상처가 많아서 아예 잼으로 만들어 파는 것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원피 그대로에 가까울수록 비싸고 귀하고, 손을 많이 댈수록 저렴해지는 원리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두면 좋은 게 있는데, 같은 등급이라도 소가 어느 지역에서 자랐고 어떤 환경에서 지냈는지에 따라 품질이 또 달라집니다.
목장에서 넓게 풀어놓고 키운 소는 가시덤불에 긁히거나 다른 소와 부딪혀 생긴 흠집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고, 좁은 축사에서 관리된 소는 표면이 비교적 깨끗한 편입니다.
저는 새로운 원산지의 가죽을 처음 받아볼 때마다 이런 배경까지 함께 살펴보는 습관이 있는데, 같은 풀그레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산지에 따라 만졌을 때의 결이나 광택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현장에서 보는 흠집 개수, 진짜 A·B·C 기준
그런데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국제 분류 대신 훨씬 간단한 말을 씁니다. 그냥 A급, B급, C급이라고 부르는 거죠. 이건 학술적인 기준이라기보다, 저를 포함한 실무자들이 소가죽 한 장을 눈으로 훑어보면서 매기는 현장 감각에 가깝습니다.
가죽 한 장을 펼쳐놓고 상처, 벌레 물린 자국, 혈관 자국, 색이 고르지 않은 부분 같은 흠을 하나하나 세는데, 흠이 거의 없고 넓은 면적을 깨끗하게 쓸 수 있으면 A급, 흠이 몇 군데 있지만 재단할 때 피해 갈 수 있는 수준이면 B급, 흠이 너무 많아서 작은 조각으로만 겨우 쓸 수 있으면 C급으로 나눕니다.
저는 원단이 도착하면 늘 밝은 조명 아래서 가죽을 펼쳐놓고 손바닥으로 표면을 쭉 훑어가며 확인하는데, 눈으로 안 보이던 잔흠도 손끝으로 만지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국내 섬유·의류 검사 기관에서도 원단이나 완제품을 사람이 직접 눈으로 살펴보는 전수 검사와, 일부만 뽑아 확인하는 샘플링 검사 두 가지 방식을 함께 활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저희 현장에서 가죽을 등급별로 나누는 방식도 이 원리와 비슷합니다(한국의류시험연구원).
결국 사람의 눈과 손이 가장 정확한 검수 도구인 셈입니다. 이 등급 나누기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가죽 한 장의 크기가 보통 성인이 두 팔을 벌린 것보다 넓은데, 그 전체 면적을 구역구역 나눠 흠집 위치를 손으로 표시해가며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죽을 재단을할때 색깔이 다른 초크 펜을 몇 개씩 준비해두고, 큰 흠집과 작은 흠집을 구분해서 표시해두는 저만의 방식을 씁니다. 이렇게 표시해두면 나중에 재단 담당자가 굳이 다시 가죽을 살펴보지 않아도 어느 부분을 피해서 잘라야 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작업 시간도 줄이고 실수도 줄일 수 있습니다.
등급 기준, 현장에서 가격과 완성품에 어떻게 영향을 줄까
이렇게 나뉜 등급은 실제로 가방 어디에 쓰이느냐를 결정합니다. A급은 눈에 가장 잘 띄는 가방 앞판이나 뚜껑처럼 흠 하나 없이 매끈해야 하는 부분에 씁니다.
B급은 흠집이 재봉선이나 접히는 부분에 가려질 수 있는 옆판이나 밑판에 주로 배치하고, C급은 아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안쪽 보강재로 쓰여집니다.
저는 새 원단이 들어올 때마다 이 등급을 먼저 나눠놓고, 어떤 부위에 어떤 등급을 배치할지 미리 계획을 세우는데, 이렇게 하면 비싼 가죽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완성품 전체의 품질은 그대로 지킬 수 있습니다.
등급을 제대로 나누지 않고 무작정 재단하면 좋은 가죽을 안 보이는 곳에 낭비하거나, 반대로 흠 있는 가죽을 눈에 띄는 곳에 써버리는 실수가 생기는데, 저도 예전에 이런 배치를 잘못해서 완성 후에야 흠집을 발견하고 다시 재단했던 적이 있습니다.
등급을 정확히 나누는 이 작업이 사소해 보여도, 결국 같은 원단으로 얼마나 알뜰하고 예쁘게 가방을 만들어내는지를 가르는 핵심 단계라는 걸 그때 확실히 배웠습니다.
등급별로 가격 차이도 상당한 편인데, 같은 원산지의 가죽이라도 A급과 C급은 가격이 꽤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제품을 기획할 때 이 가방이 어떤 가격대를 목표로 하는지에 따라 애초에 어떤 등급의 가죽을 얼마나 섞어 쓸지부터 계산합니다.
무조건 A급만 고집하면 가격이 너무 올라가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등급을 [평당 1 SF(스퀘어피트)
= 0.0929㎡ = 929.03㎠
= 정사각형으로 보면 한 변 30.48cm × 30.48cm (1피트 = 30.48cm) ]낮추면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이 균형을 잘 잡는 게 실무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다시 느낀 건, 우리가 매장에서 보는 매끈한 가방 한 점도 사실은 이렇게 손으로 흠집을 세어가며 골라낸 가죽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겉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는 가죽이라도, 그 뒤에는 사람의 눈과 손끝으로 하나하나 확인한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이 조용한 검수 과정이야말로 가방의 품질을 실제로 지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