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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견적을 받을 때 ‘소가죽’이라는 이름만 확인해서는 가격을 제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비슷한 검은색 소가죽인데 어떤 것은 가격이 높고, 어떤 것은 의외로 저렴합니다. 두께까지 비슷하다면 비싼 쪽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가방 생산을 처음 배울 때는 가죽의 종류와 두께가 같으면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오랫동안 가방을 생산하고 직접 브랜드까지 운영하면서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가죽 한 장의 가격보다 그 안에서 실제로 가방의 몸판을 얼마나 재단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원피의 상태와 표면 가공, 색상, 주문수량도 견적에 영향을 줍니다. 싸게 구입한 가죽에서 버리는 부분이 많이 나오면 완성된 가방 한 개에 들어가는 가죽값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같은 소가죽인데도 가격이 다른 이유는 견적서에 적힌 이름보다 가죽을 펼쳤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가죽값은 크기보다 사용할 수 있는 면적에서 달라집니다
소가죽에는 동물이 살아 있을 때 생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목 부분에는 굵은 주름이 잡히고, 배 쪽은 조직이 느슨하며, 표면에는 벌레 자국과 상처, 혈관 자국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모두 천연가죽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지만 제품의 어느 부분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허용 범위가 달라집니다.
작은 가죽 장식이나 지갑은 깨끗한 부분을 골라 좁은 패턴을 배치할 수 있습니다. 넓은 토트백 앞판은 사정이 다릅니다. 절개선 없이 하나의 몸판을 재단해야 하므로 중간에 깊은 주름이나 상처가 있으면 주변 면적까지 사용하기 어려워집니다. 가죽 자체는 크게 남아 있는데 정작 필요한 앞판이 나오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방 공장에서 재단 상태를 볼 때 저는 가죽 한 장의 전체 크기만 보지 않습니다. 앞판과 뒤판이 몇 세트 나오는지, 손잡이와 옆판을 어느 부위에 배치할 수 있는지를 함께 확인합니다. 면적당 단가가 낮아도 몸판을 적게 재단하면 좋은 견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남는 부분을 다른 제품에 사용할 계획이 없다면 그것도 모두 원가가 됩니다.
제품의 검품 기준이 까다로울수록 손실은 더 커집니다. 거래처에서 잔주름과 혈관 자국까지 허용하지 않으면 재단사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는 그만큼 좁아집니다. 천연가죽의 흔적을 디자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제품이라면 더 넓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가죽을 놓고도 브랜드가 정한 품질 기준에 따라 필요한 수량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밝은색 가죽은 선별 과정이 더 까다로운 편입니다. 검은색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얼룩과 상처가 베이지나 아이보리에서는 눈에 잘 띕니다. 앞판과 뒤판의 색조가 조금만 달라도 한 가방 안에서 차이가 보입니다.
그래서 가죽 견적을 확인할 때는 품번과 두께뿐 아니라 생산할 색상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같은 소가죽이라도 검은색과 아이보리색의 재단 손실을 똑같이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26년 동안 생산 현장을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은 간단했습니다. 공장에서 말하는 가죽 사용량과 실제로 깨끗한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량은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죽을 얼마나 샀는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나오는지가 가방의 원가를 결정합니다.
무두질과 표면 가공을 거치면 같은 원피도 달라집니다
원피가 가방용 가죽이 되려면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쉽게 부패하는 원피를 안정된 가죽으로 바꾸는 무두질을 합니다. 패션 가방에는 부드럽고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기 좋은 크롬 무두질 가죽이 많이 사용됩니다. 식물에서 얻은 탄닌으로 가공하는 베지터블 무두질 가죽은 비교적 탄탄하고, 사용할수록 색이 깊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무두질이 끝났다고 바로 가방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죽의 성질을 조절하는 재무두질, 색을 입히는 염색, 유분을 보충하는 가지 작업이 이어집니다. 그다음에는 건조하고 표면을 정리해 원하는 광택과 촉감을 만듭니다. 어느 정도로 부드럽게 만들 것인지, 가방의 형태를 잡을 만큼 힘을 남길 것인지에 따라 사용하는 약품과 작업 방식도 달라집니다.
가죽을 처음 만졌을 때 부드럽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몸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숄더백이라면 부드러운 가죽이 잘 맞지만, 각이 살아 있어야 하는 토트백에 사용하면 앞판이 처질 수 있습니다.
가죽이 너무 늘어나면 봉제선 주변이 울거나 지퍼가 물결처럼 휘기도 합니다. 반면 단단한 가죽을 접히는 구조에 사용하면 모서리가 하얗게 뜨거나 표면에 깊은 주름이 생길 수 있습니다.
표면을 어떻게 마감했는지도 가격에 반영됩니다. 세미 아닐린 가죽은 소량의 안료와 얇은 보호막을 사용해 모공과 잔주름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남깁니다. 원피의 표면이 그대로 보이므로 깨끗한 부분을 골라야 하고 재단 과정에서도 손실이 커질 수 있습니다.
피그먼트 가죽은 안료를 사용해 표면과 색상을 균일하게 정리합니다. 작은 상처와 모공 차이가 덜 보이기 때문에 대량생산에서 제품의 외관을 맞추기 수월합니다. 그렇다고 피그먼트 가죽을 무조건 낮은 등급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얇은 코팅으로 색상을 안정시키면서 가죽의 유연성까지 유지하려면 가공 기술이 필요합니다.
엠보 가공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에 무늬를 넣으면 부위별 모공 차이를 줄이고 가죽 사용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엠보판과 프레스 작업, 색상 보정 등의 비용이 더해집니다. 자연스럽게 수축시켜 요철을 만든 슈렁큰 가죽과 기계로 일정한 무늬를 찍은 가죽은 사진으로 비슷해 보여도 직접 만져보면 결의 깊이와 촉감이 다릅니다.
소비자는 완성된 가죽의 앞면을 먼저 보지만, 생산자는 뒷면과 두께도 살펴야 합니다. 부위마다 두께가 심하게 다르지 않은지, 접었을 때 표면이 갈라지지 않는지, 봉제 과정에서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는지를 확인합니다. 이런 공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했는지가 가죽 가격에 숨어 있습니다.
저렴한 가죽이 가방 원가까지 낮춰주지는 않습니다
샘플 한 개를 만들 때는 한 장의 가죽에서 가장 깨끗한 부분을 고를 수 있습니다. 본생산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백 개의 가방을 만들려면 입고된 가죽의 색상과 두께, 촉감이 일정해야 합니다. 샘플은 훌륭했는데 본생산 제품을 한곳에 모아놓으니 색상이 제각각인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천연가죽은 생산 로트에 따라 붉은 기와 노란 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작은 스와치만 따로 보면 그 차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앞판과 옆판을 연결했을 때 색조가 다르면 한 제품 안에서도 바로 눈에 들어옵니다. 이럴 때는 가죽을 비슷한 색상끼리 다시 나누고, 한 가방에는 같은 색상군만 사용하도록 재단해야 합니다. 선별하는 시간도 늘고 재단 효율도 낮아집니다.
가죽을 선택할 때 제가 실제 가죽을 여러 장 펼쳐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색상은 자연광과 실내조명에서 다르게 보이므로 조명도 바꿔 확인합니다. 손으로 구부려 표면이 하얗게 뜨는지 보고, 마른 흰색 천으로 문질러 색이 묻어나는지도 살펴봅니다. 손잡이나 스트랩에 사용할 가죽이라면 반복해서 움직였을 때 표면이 견딜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주문수량에 따라서도 가격은 달라집니다. 제혁공장에서 계속 생산하는 기본 색상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브랜드만의 색상을 개발하려면 염료를 새로 배합하고 시험생산을 해야 합니다. 적은 수량을 주문해도 최소 생산수량을 맞춰야 하므로 사용하고 남은 가죽이 재고가 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색상을 정확하게 만들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개발비와 재고 부담이 따라옵니다.
한국에서 구입하는 가죽과 해외에서 들여오는 가죽은 단가만 놓고 비교하기도 어렵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생산하면 환율과 운송비, 통관비를 계산해야 합니다. 가죽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보내고 교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원가의 일부입니다. 추가 주문한 가죽의 색상이 처음과 다르면 생산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기 전에는 생산 불량을 공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판매까지 해보니 가죽의 작은 문제 하나가 고객 응대와 교환, 재고, 브랜드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표면이 벗겨지거나 진한 색이 옷에 묻어나면 가죽값 몇 푼을 아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견적서에 적힌 가죽 단가만 보고 소재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 가죽으로 몸판을 얼마나 재단할 수 있는지, 본생산에서도 샘플과 같은 색과 촉감이 나오는지, 완성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는지를 먼저 살펴봅니다.
비싼 가죽이라고 모든 가방에 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저렴한 가죽이라고 항상 원가를 낮춰주는 것도 아닙니다. 버리는 부분과 추가 작업, 불량 가능성까지 계산한 뒤 가방 한 개를 완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생산 현장에서 판단하는 가죽의 실제 가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