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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디올, 슈슈라는 이름이 다이애나비 애칭으로 바뀐 사연
1995년 9월,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는 화가 폴 세잔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참석했는데, 그날 그녀의 손에는 아직 정식 이름도 없던 디올의 새 가방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 하나의 장면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명품 가방 역사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걸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 가방은 원래 정식 이름이 없었습니다. 디올 하우스 안에서는 그저 '슈슈'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건 크리스찬 디올이 아끼던 뮤즈 미차 브리카드의 별명에서 따온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의 부인이었던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파리를 방문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선물할 가방으로 이 슈슈를 골랐습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 가방을 유독 좋아해서 그해 리버풀 방문, 아르헨티나 순방 등 여러 공식 일정마다 계속 들고 나왔고, 이 모습이 언론에 반복해서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됐습니다.
결국 1996년, 디올은 이 가방에 정식 이름을 붙이기로 하는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애칭이었던 '레이디 디(Lady Di)'에서 따와 '레이디 디올'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보그 코리아). 쉽게 말하면 원래 별명으로만 불리던 가방이, 그 가방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람의 이름을 정식으로 물려받은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참 신기합니다. 보통 브랜드가 먼저 이름을 짓고 그 다음에 유명해지는데, 이 가방은 반대로 유명해진 다음에 이름이 붙었으니까요. 26년 넘게 이 업계에 있으면서 이렇게 순서가 뒤집힌 작명 사례는 흔치 않았습니다.
까나주 패턴, 의자에서 가져온 퀼팅 무늬 이야기
레이디 디올의 겉면을 보면 마름모 모양으로 두툼하게 누빈 무늬가 있는데, 이걸 '까나주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이 무늬는 놀랍게도 가방이 아니라 의자에서 왔습니다.
나폴레옹 3세 시절 유행했던 의자에 등받이와 방석을 등나무 줄기로 엮은 디자인이 있었는데, 그 짜임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패턴이 바로 까나주입니다.
초등학생 친구들이 자주 앉는 등나무 의자나 바구니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운데, 그 얇은 줄기들이 서로 겹치면서 만드는 마름모 무늬를 가죽 위에 그대로 옮겨온 겁니다.
실로 누비는 방식이다 보니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갑니다. 저도 비슷한 마름모 누빔 패턴을 직접 만들어본 적이 여러 번 있는데, 간격 하나하나를 똑같이 맞추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손잡이 쪽으로 갈수록 무늬가 좁아지거나 넓어지지 않게 조절하는 부분에서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이런 디테일이 쌓여서 레이디 디올이 웬만한 다른 퀼팅 가방보다 손이 많이 가는 제품으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가방 손잡이에는 D, I, O, R 알파벳 참이 매달려 있는데, 이 역시 디올이라는 이름을 장식이 아니라 가방의 일부로 새겨 넣은 디테일입니다.

다이애나비가 사랑한 이유, 레이디 디올이 갖는 상징성
그렇다면 다이애나비는 왜 이 가방을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정확한 이유가 공식적으로 남아 있진 않지만, 당시 사진들을 보면 그녀가 이 가방을 다양한 옷차림에 자유롭게 매치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한 드레스에도, 캐주얼한 정장에도 무리 없이 어울렸던 걸 보면 디자인 자체가 특정 스타일에 갇혀 있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레이디 디올은 지금도 디올 공방에서 거의 모든 공정을 손으로 작업하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다이애나비의 선택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직접 만든 물건에는 미세하게라도 그 사람의 손길이 남기 마련인데, 이런 디테일은 오래 들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거든요. 저는 실무에서 여러 브랜드의 수공예 라인을 다뤄봤지만, 손으로 만든 제품일수록 첫인상보다 오래 썼을 때 만족도가 높아지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레이디 디올이 3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결국 시간이 지나도 티가 나지 않는 견고함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가방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결국 오래 사랑받는 물건에는 우연 같아 보이는 필연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우연히 선물 받은 가방이, 그 사람의 애칭을 달고 30년 가까이 이어지는 아이콘이 됐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여전히 놀랍습니다.
저는 좋은 디자인이란 화려한 기교보다 이렇게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서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레이디 디올은 그 증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가방 중 하나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