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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6년 동안 가방을 디자인하고, 국내외 원단 현장과 봉제 공장을 누비며 수만 개의 가방을 만들어온 가방 디자이너 infomina입니다.
아침에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릴 때, 애지중지 아끼던 명품 가죽 가방을 품에 꼭 안고 비를 피해보신 경험이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닦아보았지만 이미 물방울 모양대로 동글동글하게 검은 얼룩이 남아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셨던 적도 있으셨을 텐데요.
많은 분들이 "가죽은 원래 다 물에 약한 거 아니야?" 혹은 *"명품 가죽 가방이니까 비 좀 맞아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곤 하십니다. 하지만 26년 차 현직 가방 디자이너로서 제 이름을 걸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가죽이 물에 반응하는 모습은 가죽을 무두질(가공)하고 표면을 마감한 방식에 따라 완전히 극과 극으로 나뉩니다.
비 오는 날 가지고 나갔다간 평생 지워지지 않는 영구적인 상처가 남는 가죽이 있는 반면, 빗물이 후두둑 떨어져도 또르륵 튕겨내는 천하무적 가죽도 있습니다.
오늘은 비 오는 날 절대 들면 안 되는 물에 쥐약인 가죽과 비를 맞아도 끄떡없는 가죽의 비밀,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를 맞았을 때 집에서 10분 안에 내 소중한 가방을 살려내는 가방 심폐소생술 응급처치법까지 디테일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1. 물 한 방울에 얼룩 생기는 베지터블/스웨이드 가죽의 대참사
가방을 사랑하는 분들이 가장 탐내는 가죽 중 하나가 바로 자연스러운 멋이 살아있는 '베지터블(Vegetable) 가죽'과 보들보들한 감촉의 '스웨이드(Suede/세무) 가죽'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단언컨대, 이 두 가죽은 비 오는 날 가지고 나가는 순간 '가방의 수명이 끝나는 대참사'를 맞이하게 되는 대표적인 소재입니다.
[📸 사진 2 첨부: 빗물 방울 자국이 물들어 검게 변한 베지터블 가죽이나 스웨이드 표면 사진]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 볼까요? 우리가 목욕탕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손가락 끝 피부가 물을 흡수해서 쭈글쭈글해지고 색이 변하죠? 혹은 바짝 마른 식빵 위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식빵이 물을 싹 흡수하면서 그 부분만 어둡고 눅눅하게 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베지터블 가죽은 식물에서 추출한 자연 성분(탄닌)으로 무두질하고 표면에 화학 코팅을 거의 하지 않은 '숨 쉬는 가죽'입니다. 가죽 본래의 모공이 그대로 열려있기 때문에 공기 중의 유분이나 수분을 즉시 흡수해 버립니다. 비를 맞으면 가죽 모공 속으로 빗물과 공기 중의 먼지가 함께 침투하면서 '물 얼룩(Water Spot)'이 생기는데, 이 얼룩은 가죽 내부 유분 구조를 변형시키기 때문에 건조된 후에도 검은 자국으로 평생 남아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스웨이드 가죽은 가죽의 안쪽을 긁어 미세한 보풀을 세운 가죽입니다. 가뜩이나 모공이 노출되어 있는데 보풀 사이사이로 빗물이 솜사탕처럼 스며들어 버립니다. 빗물에 젖은 스웨이드 보풀은 떡처럼 뭉쳐버리고, 마르면서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가죽 경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부드러운 감촉은 사라지고 과자처럼 딱딱해지며 색상이 얼룩덜룩하게 탈색되는 것이죠.
제가 현장 디자이너 초립 시절,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고급 베지터블 가죽으로 만든 샘플 가방을 들고 나갔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가방을 옷 속에 품고 달렸지만 빗방울 몇 방울이 가방 표면에 떨어졌죠. 집에 와서 드라이기로 말렸지만 물방울 자국이 곰팡이처럼 검게 남아 결국 몇백만 원짜리 원단 샘플을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기억이 있습니다.
2. 비 오는 날 끄떡없는 사피아노/엠보 가죽의 코팅 비밀

반대로 장마철이나 소나기가 퍼붓는 날에도 우산처럼 빗물을 또르륵 튕겨내며 멀쩡함을 자랑하는 가죽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라다 가방으로 유명한 '사피아노(Saffiano) 가죽'과 열과 압력으로 무늬를 눌러 찍은 '크롬 엠보(Embo) 코팅 가죽'입니다.
이 가죽들이 비에 강한 비밀은 가죽 제작 공정의 마지막 단계인 '특수 왁스 코팅'과 '열가공 기술'에 있습니다.
이것도 아주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비 오는 날 우리가 자동차 유리창이나 젖지 않는 우비 상의에 방수 코팅 스프레이를 싹 뿌려놓으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동글동글 맺혀서 그냥 스르륵 흘러내리죠? 사피아노와 엠보 가죽이 바로 가죽 표면에 고성능 방수 우비를 입혀놓은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사피아노 가죽은 천연 소가죽 표면에 철망이나 자갈 모양의 미세한 빗살 무늬를 쇠도장(철인)으로 강하게 눌러 찍은 후, 표면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왁스와 우레탄 방수 막을 두껍게 입힙니다. 이 작업 과정을 거치면 가죽의 열려있던 모공들이 완벽하게 봉인됩니다. 물분자가 가죽 모공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빗물이 가죽 내부로 침투할 구멍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화학 약품(크롬)으로 무두질한 뒤 표면에 안료(색상 페인트)와 무광/유광 보호 코팅막을 입힌 '크롬 엠보 가죽' 역시 물과 오염에 극도로 강합니다. 비를 맞아도 빗물이 가죽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에 방울 맺혀 가만히 머물러 있게 됩니다.
26년 동안 수많은 가방을 디자인하면서 비 오는 날 고객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소재가 바로 이 코팅 가죽들입니다. 빗물이 묻어도 휴지나 타월로 슥 닦아내기만 하면 단 1초 만에 처음 상태 그대로 원상복구되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한국의 여름철 장마 시즌이나 일상 데일리백 소재로는 가장 스트레스가 적고 완벽한 가방 소재가 되어 줍니다.
3. 갑자기 소나기를 맞았을 때 10분 이내에 해야 하는 가방 심폐소생술
예상치 못한 기습 소나기로 아끼는 가죽 가방이 빗물에 흠뻑 젖었다면, 당황해서 발만 굴르지 마시고 가방을 집에 가져오자마자 10분 이내에 아래의 3단계 응급처치(심폐소생술)를 반드시 실시하셔야 합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가죽이 비틀어지고 곰팡이가 피어 가방을 버리게 됩니다.
1단계: 절대 문지르지 말고 마른 타월로 '꾹꾹' 눌러서 수분 제거하기
가방이 젖었을 때 가장 흔히 하는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가 물기를 닦아내겠다고 휴지나 수건으로 가방 표면을 싹싹 문지르는 것입니다. 물에 젖은 가죽은 표면이 매우 약해진 상태라 문지르는 순간 표면 염색이 벗겨지거나 때가 모공 속으로 더 깊이 침투합니다. 반드시 부드러운 마른 수건이나 마른 헝겊으로 물방울이 맺힌 부위를 꾹꾹 눌러가며 수분을 흡수시켜야 합니다.
2단계: 헤어드라이어 절대 금지! 자연 바람으로 말리기
가방을 빨리 말리겠다고 따뜻한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쐬어주거나 온돌방 바닥, 직사광선에 가방을 두면 100% 망합니다. 가죽은 단백질 소재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열을 받으면 가죽 속 수분과 유분이 동시에 증발하면서 단단하게 오그라드는 '가죽 경화 및 변형'이 일어납니다. 가방은 반드시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음지(그늘)에서 자연 바람으로 천천히 말려주셔야 합니다.
3단계: 가방 안쪽에 신문지/마른 천을 빵빵하게 채워 형태 잡기
가죽이 젖었다가 마르는 과정에서 가방의 원래 형태가 찌그러지거나 바닥이 주저앉기 쉽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가방 내부의 수분을 흡수해 주고 뼈대 역할을 해줄 신문지나 마른 면 천을 가방 안쪽에 빵빵하게 채워 넣어주세요. 신문지는 가방 내부의 습기를 빠르게 빠라들여 곰팡이 발생을 막아주고 가방의 본래 각(Shape)을 예쁘게 유지해 줍니다. 신문지가 눅눅해지면 2~3시간 간격으로 새 신문지로 교체해 주는 것이 디자이너만의 알짜 비법입니다.
26년 차 디자이너의 솔직한 결론
가방을 고르고 사용할 때 디자인이나 브랜드만 볼 것이 아니라, 오늘 알려드린 "이 가죽이 물을 흡수하는 모공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방수 코팅막으로 봉인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는 날이라면 베지터블이나 스웨이드 소재 가방은 잠시 장롱 속에 쉬게 해두시고, 사피아노나 코팅 엠보 가죽 가방을 들고 나가는 작은 선택 하나가 여러분의 소중한 명품 가방 수명을 10년 이상 늘려줄 것입니다. 혹시라도 비를 맞았다면 오늘 알려드린 '마른 타월 꾹꾹 + 그늘 건조 + 신문지 채우기' 3단계 심폐소생술을 꼭 기억해 두셨다가 실천해 보세요!
오늘 정리해 드린 디자이너의 가죽 수분 관리 노하우가 여러분의 지혜로운 가방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