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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업을 26년 하다 보면 실패라는 단어 자체가 좀 무뎌집니다. 처음엔 실패 한 번에 며칠씩 잠을 못 잤는데, 지금은 실패가 오면 '아 또 왔구나' 하고 일단 숨부터 고르게 됩니다.

     

    오늘은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신사동에서 매장을 운영하다 문을 닫았던 경험, 생산 26년 동안 거래처 네 곳이 부도를 내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렸던 시기, 그리고 디자이너였던 제가 생산자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과정까지.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이런 실패의 순간들이 사실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서요.

    폐업이라는 실패 앞에서, 숫자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더라고요

    신사동 매장을 정리하기로 결정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백화점 팝업까지 진행하면서 나름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는데, 재고는 쌓이고 회전은 안 되고, 어느 순간 숫자가 저를 밀어붙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엔 '조금만 더 버티면'이라는 생각으로 몇 달을 끌었습니다.

     

    근데 그 몇 달이 결국 손실만 키웠더라고요. 폐업을 결심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서류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사업자등록 정리하고 세무서 다녀오고 하는 건 오히려 기계적으로 처리가 되는데, 문제는 마음이었어요.

     

    몇 년을 쏟아부은 브랜드를 내 손으로 접는다는 게,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서명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폐업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 제가 가장 잘하던 걸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는 매장을 열기 전부터 이미 생산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OEM, ODM으로 물건을 만들던 게 제 본업이었고, 신사동 매장은 그 위에 얹은 개인 브랜드였던 거죠. 매장을 접으면서 다시 생산업 하나에 집중하게 됐고, 지나고 나니 그게 실패라기보다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시절 매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있어요. 손님이랑 직접 눈 맞추고 옷 입혀드리던 그 감각은 생산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니까요. 근데 실패를 대하는 태도라는 게 결국 '이것도 나쁘지 않았네'라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재도전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정부 지원 정보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재도전종합지원센터에서 관련 정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납품처 네 곳의 부도, 그래도 내가 끝까지 지켜온 것은 신용이었다

    26년이라는 시간을 생산업 하나로 버텨오면서 제일 아찔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부도 이야기를 꺼냅니다. 제가 물건을 납품한 곳이 부도를 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정확히 네 곳이었습니다.

     

    열심히 만들어서 납품까지 다 끝냈는데, 정작 대금을 받아야 할 시점에 그 거래처가 부도가 나버리면 저는 그냥 돈을 못 받는 겁니다. 이미 원자재비도 나갔고 공임도 다 나간 상태에서요. 처음 그런 일을 겪었을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받아야 할 돈은 못 받았는데, 저는 제가 결제해야 할 곳엔 결제를 해야 하잖아요.

     

    근데 신기하게도 그 위기의 순간마다 저를 붙잡아준 게 있었어요. 바로 그동안 제가 쌓아온 신용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결제해줘야 하는 곳에 한 번도 대금을 못 준 적이 없었습니다. 조금 늦어진 적은 있어도, 끝까지 미루거나 떼먹은 적은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급하게 자금이 막혔을 때,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 흔쾌히 기다려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제가 신용을 지켜온 걸 다들 알고 계셨으니까요. 그때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사업이라는 게 결국 숫자와 계약서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진짜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거래처의 부도는 제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그 실패가 저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도록 지탱해준 건 결국 제가 오랫동안 지켜온 신용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대금 지급만큼은 절대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언제 또 비슷한 위기가 올지 모르니까, 그때 저를 지켜줄 건 결국 또 신용일 테니까요. 사업 자금 관련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자금 정보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진짜로 바뀐 순간, 디자이너에서 생산자로

    돌이켜보면 제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뀐 시점이 있습니다. 디자이너였을 때 저는 완성된 결과물만 봤어요. 예쁜 샘플, 매끄러운 라인, 그게 제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그 뒤에 QC 샘플이 몇 번을 오가는지, 통관 서류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원단 하나가 한국 것과 중국 것이 손끝 감촉부터 다르다는 것도 전혀 몰랐습니다.

     

    생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겪게 됐는데, 그 과정 자체가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디자인 의도가 제대로 전달이 안 돼서 중국 공장에서 엉뚱한 결과물이 나온 적도 많았고, S/L 같은 부자재가 한국 샘플과 중국 실제 생산분이 미묘하게 달라서 다시 작업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근데 그 실패들을 하나씩 겪으면서 제 안에 어떤 원칙이 생겼어요. 바로 샘플은 반드시 한국에서 제가 직접 관리하며 만들고, 본 생산 전에는 무조건 중국 현지 원부자재로 큐시 작업을 한 번 더 거친다는 원칙입니다. 이건 이론으로 배운 게 아니라 실패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몸으로 터득한 방법입니다.

     

    실패를 대하는 제 태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좌절하는 시간은 짧게 가져가되, 그 실패가 왜 일어났는지는 끝까지 파고드는 거죠. 디자이너였던 저는 결과만 보고 판단했지만, 생산자가 된 저는 과정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 변화가 사실 제일 큰 성장이었던 것 같아요. 완벽하게 실패를 피하는 방법은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덜 두려워지더라고요.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실패 이야기들이 다 하나로 이어지네요. 매장을 접었던 것도, 거래처 부도로 휘청였던 것도, 결국 제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를 시험받은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매장 없이 ODM/OEM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손님과 직접 소통하던 감각, 매장에 진열된 제 브랜드를 보던 뿌듯함,  근데 그때의 실패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생산 하나에 집중하는 삶도, 공장 파트너들과 쌓아온 신뢰도 없었을 겁니다.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제품을 바라보게 된 것도, 결국 실패를 여러 번 통과하면서 얻은 감각이고요. 실패를 대하는 태도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다음엔 조금 덜 아프게 넘어가는 방법을 찾고, 그 와중에도 사람과의 신뢰만큼은 놓지 않는 것 정도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비슷한 실패를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게 끝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