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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메스 가방 이름 속 사람들 버킨백과 콘스탄스백

    에르메스 가방은 이름이 워낙 많아서, 켈리와 버킨 정도는 알아도 나머지 이름은 헷갈리거나 아예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은 그런 분들을 위해 에르메스 가방 이름과 유래를 한 번에 총정리해드리려고 합니다. 켈리백의 역사는 지난번에 자세히 다뤘으니 이번엔 짧게 짚고 넘어갈게요. 원래 삭 아 데페슈라는 서류가방이었다가,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며 든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1977년에 정식으로 켈리백이라는 이름을 얻은 가방이었죠. 오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버킨백, 콘스탄스백, 볼리드백, 피코탄, 린디, 에블린까지 여섯 가지 이름의 유래를 설명 위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버킨백 : 이름의 주인공은 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입니다. 1984년,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당시 에르메스 회장이었던 장 루이 뒤마 옆자리에 제인 버킨이 앉게 됐는데요. 짐이 너무 많아 바구니 가방에서 물건이 쏟아지는 모습을 본 뒤마 회장이 다 들어가는 가방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제안하면서 탄생한 가방이 바로 버킨백입니다(출처: 보그 코리아).

     

    이 가방을 만들 때 쓰인 새들 스티치라는 기법이 있는데요, 두 개의 바늘로 하나의 실을 양쪽에서 엇갈리게 넣어 손으로 한 땀 한 땀 꿰매는 방식을 말합니다. 재봉틀로 박은 실은 한 올이 끊어지면 전체가 주르륵 풀리지만, 새들 스티치는 실 한 올이 끊어져도 옆 땀이 버텨주기 때문에 훨씬 튼튼합니다. 제가 직접 이 방식으로 샘플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속도는 기계 박음질보다 몇 배는 느리지만 완성됐을 때 힘을 줘도 잘 안 뜯기는 게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콘스탄스백 : 1959년, 캐서린 샤이예라는 디자이너가 이 가방을 처음 만들었는데 당시 임신 중이었던 그녀가 태어날 다섯째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가방에 붙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Hermès 대한민국 공식 사이트). 앞면에 있는 H자 모양의 잠금장치가 특징인데, 이건 세로로 선 두 개의 지지대와 가로로 뻗은 막대가 균형을 이루는 구조로, 플랩 안쪽에 숨어 있는 스프링 장치를 눌러야 열리는 방식이에요. 저는 이 H 버클을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장식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분해해서 구조를 살펴보니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한 잠금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도 잘 헐거워지지 않도록 설계된 게 인상 깊었습니다.

    볼리드백과 피코탄, 오래된 유산과 마구간에서 온 이름

    볼리드백 : 켈리백이나 버킨백보다도 훨씬 먼저 태어난 가방입니다. 1923년에 나왔으니 100년이 넘은 셈이죠. 처음에는 자동차 트렁크 안에 쏙 들어가도록 만든 여행용 가방이었고, 볼리드라는 이름도 프랑스어로 빠른 차나 유성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왔습니다(출처: BagUSeek). 이 가방이 가진 진짜 의미는 이름보다 기술에 있는데요, 가죽 가방 최초로 지퍼를 도입한 제품이 바로 볼리드백입니다.

    지금이야 지퍼 달린 가방이 당연하지만, 그 전까지는 버클이나 끈으로만 여미던 시절이었으니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시도였던 거죠. 제 경험상 이렇게 오래된 가방일수록 하드웨어, 그러니까 지퍼나 잠금쇠 같은 금속 부자재의 도금 방식을 보면 그 시대의 기술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데, 볼리드백의 초기 지퍼는 손으로 일일이 다듬은 흔적이 남아 있어서 기계로 찍어낸 요즘 부자재와는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피코탄 : 프랑스어로 말에게 하루치 주는 귀리 사료 계량 단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마구간에서 쓰던 오픈탑 사료통 모양을 그대로 가져와서 만들었다고 해요(출처: BagUSeek). 2002년에 처음 나왔을 때는 안감도 없고 잠금장치도 없는 단순한 버킷백 실루엣이었는데요, 여기서 버킷백이란 위가 뻥 뚫려 있고 아래로 갈수록 살짝 좁아지는 양동이 모양 가방을 말합니다. 입구가 넓어서 손을 넣고 물건을 바로바로 꺼낼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반대로 지퍼가 없어 안이 다 들여다보인다는 단점도 있어요. 제가 직접 피코탄과 비슷한 버킷 형태의 샘플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입구를 너무 넓게 뚫으면 가방이 힘없이 축 처지는 문제가 생겨서, 바닥과 옆면 가죽의 두께를 다르게 써서 형태를 잡아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린디와 에블린, 춤과 마구간 직원의 이름

    린디 : 이름이 사람이 아니라 춤에서 왔다는 걸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거예요. 1920~3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스윙 댄스인 린디합에서 따온 이름인데, 몸을 가볍게 튕기듯 움직이는 그 춤의 경쾌한 느낌을 가방에 담고 싶었다고 해요(출처: Hermès 대한민국 공식 사이트). 양쪽에 달린 두 개의 스트랩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손에 들 때마다 실루엣이 조금씩 다르게 흔들리는데, 이게 딱 춤을 출 때 옷자락이 흔들리는 느낌을 연상시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저는 처음에 이 가방 이름을 듣고 당연히 유명인의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에블린 : 에르메스 승마 부서를 책임지던 실제 직원 에블린 베르트랑의 이름을 그대로 딴 가방이에요(출처: BagUSeek). 1978년에 처음 나왔는데, 원래는 패션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구간에서 쓰던 실용적인 도구 가방이었습니다. 젖은 브러시나 스펀지, 말빗 같은 걸 넣고 다니던 가방이라 안쪽에 안감을 대지 않고 가죽을 그대로 노출시켰는데, 이게 통기성을 위해서였다고 해요. 앞면에 크게 뚫려 있는 H자 모양 펀칭도 장식이 아니라 젖은 도구가 마를 수 있도록 만든 통풍구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처음에는 순수하게 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던 물건이 나중에 패션 아이템으로 넘어오는 경우, 오히려 그 투박함이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여섯 가지 가방 중 이름이 가장 오래된 건 무엇인가요.
    답변 : 1923년에 나온 볼리드백이 가장 오래됐고, 그다음이 1935년의 켈리백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사람 이름이 아닌 것도 있나요.
    답변 : 네. 볼리드는 빠른 차, 피코탄은 말 사료 계량 단위, 린디는 스윙 댄스에서 따온 이름이라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 피코탄과 에블린의 공통점이 있나요.
    답변 : 둘 다 원래 마구간에서 실용적인 용도로 쓰던 물건에서 출발한 디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6년 동안 가방을 만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의 대표 상품들을 뜯어보고 분석해왔는데, 이번에 여섯 가지 이름을 정리하면서 다시 느낀 게 있습니다. 좋은 이름은 결국 그 가방이 태어난 맥락을 가장 짧게 요약해준다는 것입니다. 버킨백은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대화에서, 피코탄과 에블린은 마구간의 실용적인 도구에서, 볼리드백은 자동차 시대의 기술 혁신에서 이름을 얻었죠. 저도 예전에 신사동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방에 이름을 붙여봤는데, 그때는 이름을 짓는 일이 디자인이 끝난 다음에 덧붙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씩 뜯어보니, 오히려 이름이 그 가방을 왜 만들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름은 억지로 지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가방이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가방을 구상할 때 이름보다 먼저 이 가방이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먼저 명확히 하려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가든파티, 에르백, 플륌, 베루, 24/24, 빅토리아, 롤리스까지 나머지 일곱 가지 이름을 이어서 정리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