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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메스 가방 가든파티와 에르백, 상황과 목적에서 온 이름

    지난 1편에서 버킨백, 콘스탄스백, 볼리드백, 피코탄, 린디, 에블린까지 여섯 가지 이름을 정리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이어서 가든파티, 에르백, 플륌, 베루, 24/24, 빅토리아, 롤리스까지 나머지 일곱 가지 이름의 유래를 설명 위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이번 편까지 보시면 지금까지 다룬 에르메스 가방 이름이 총 열네 가지가 됩니다.

     

    가든파티 : 이름 그대로 정원에서 열리는 파티처럼 편안한 자리에서 가볍게 들기 좋은 가방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캔버스 원단과 가죽을 함께 쓰는 투톤 구성이 특징인데, 투톤이라는 건 서로 다른 두 가지 소재나 색을 한 가방에 함께 배치하는 방식을 말해요.

    무거운 가죽만 쓰면 가방 전체가 무거워지고 캔버스만 쓰면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에, 손잡이와 바닥처럼 힘을 많이 받는 부분에는 가죽을, 몸통에는 가벼운 캔버스를 쓰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 겁니다.

     

    제가 직접 캔버스와 가죽을 조합해서 가방을 만들어 본 경험상, 두 소재의 봉제 강도를 맞추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에요. 가죽은 거의 늘어나지 않는데 캔버스는 미세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박음질 텐션을 다르게 줘야 이음새가 울지 않거든요.

     

    에르백 : 1998년 켈리백을 캐주얼하게 변형해서 만든 가방이에요(출처: 노블레스). 이름 자체가 Hermès와 Bag을 합쳐 만든 조어인데, 겉모습이 캐주얼해 보여도 만들어지는 과정은 켈리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가방의 특징은 덮개, 그러니까 플랩을 따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건데요, 플랩이란 가방 입구를 덮는 뚜껑 같은 가죽 조각을 말합니다. 플랩 안쪽에는 스냅 단추가 여러 개 박혀 있어서 몸통과 분리한 뒤 다른 색 플랩으로 갈아 끼울 수 있어요.

     

    제가 이런 탈부착 구조를 설계해 본 적이 있는데, 단추 위치를 1밀리미터만 어긋나게 뚫어도 결합했을 때 좌우 균형이 무너져서 정밀하게 재단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플륌과 베루, 여행과 잠금장치에서 온 이름

    플륌 : 프랑스어로 깃털이라는 뜻이에요. 1960년대에 나온 에르메스 최초의 전체 가죽 러기지백인데, 이름 그대로 가볍게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해요(출처: Hermès 대한민국 공식 사이트).

     

    920년대 서류 가방에서 영감을 받은 직사각형 형태가 특징인데, 여기서 러기지백이란 원래 여행 가방을 뜻하는 말로, 옷이나 소지품을 넉넉히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가방을 통칭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저는 처음에 이 가방이 무겁고 튼튼한 소재로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로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한 가방이었습니다.

     

    베루 : 프랑스어로 빗장이나 걸쇠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름 그대로 가방 앞면에 체인으로 연결된 걸쇠 모양 잠금장치가 달려 있어서 붙은 이름인데, 실제로 에르메스가 헤리티지 전시에서 대표 가방으로 소개할 만큼 상징성이 큰 제품이에요(출처: 노블레스).

     

    이 가방은 겉으로 보이는 벨트 스트랩이 잠금장치가 아니라 순전히 장식용이고, 진짜 잠금은 그 아래 숨겨진 걸쇠가 담당합니다. 걸쇠란 두 부분을 걸어서 고정하는 금속 부속을 말하는데, 겉에서는 어떻게 열리는지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 게 이 가방의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이렇게 잠금장치를 이중으로 숨겨두는 구조는 만들 때 손이 훨씬 많이 갑니다. 겉에 보이는 스트랩과 안쪽 걸쇠의 위치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이 정렬이 살짝만 틀어져도 스트랩을 채웠을 때 걸쇠가 겉으로 비치는 실수가 생기거든요.

    에르메스 가방 이름, 24/24와 빅토리아·롤리스

    24/24 : 이름 그대로 하루 24시간 언제든 들 수 있는 가방이라는 뜻으로 지어졌습니다. 2018년에 처음 나왔는데, 출근할 때도 저녁 약속에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실용성을 강조하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출처: BagUSeek).

     

    켈리백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벨트 스트랩 대신 트위스트 락이라는 잠금장치 하나로 여닫을 수 있는데, 트위스트 락이란 손끝으로 살짝 돌리기만 하면 열리는 회전식 잠금장치를 말해요. 벨트를 두 개씩 풀어야 하는 켈리백보다 훨씬 빠르게 여닫을 수 있어서 캐주얼 켈리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제가 직접 이런 트위스트 락 구조를 다뤄본 경험상, 회전 잠금장치는 부품이 적어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는 스프링 텐션을 정확히 맞추지 않으면 헐거워지거나 뻑뻑해지기 쉬워서 오히려 벨트식보다 조정이 예민한 편입니다.

     

    빅토리아 : 1997년에 나온 박스형 여행 가방인데, 이름은 사람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에서 따왔다고 해요(출처: 보그 코리아). 폭포처럼 시원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지, 실제로 이 가방은 각진 박스 실루엣이 특징이라 다른 에르메스 가방들보다 훨씬 구조적인 인상을 줍니다.

     

    롤리스는 프랑스어로 좌우로 흔들리는 움직임을 뜻하는 단어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bab.la 프랑스어 사전). 몸에 붙는 부드러운 실루엣과 짧은 스트랩이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살짝살짝 흔들리는 느낌을 주는데, 이 흔들림이 오히려 가방을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게 만들어줍니다. 제가 직접 짧은 스트랩의 가방을 만들어 본 경험상, 스트랩 길이를 몇 센티미터만 줄여도 가방이 몸에 닿는 각도가 달라지면서 흔들리는 방향과 폭이 완전히 바뀝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에르메스 가방 이름 중에 지명에서 따온 것도 있나요.
    답변 : 네. 빅토리아백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에르백과 24/24의 공통점이 있나요.
    답변 : 둘 다 켈리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변형 라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르백은 1998년, 24/24는 2018년에 나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베루백의 잠금장치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답변 : 겉에 보이는 벨트 스트랩은 장식이고, 그 아래 숨겨진 걸쇠가 실제 잠금장치 역할을 합니다.

     

    1편과 2편을 합쳐 이번에 총 열네 가지 에르메스 가방 이름을 정리했는데, 26년 동안 가방을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게 있습니다. 이름 하나에도 그 가방이 태어난 시대와 목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켈리백은 한 사람의 우연한 순간에서, 피코탄과 에블린은 마구간의 실용성에서, 24/24는 하루 종일 쓰고 싶다는 목적에서 이름을 얻었죠. 저도 예전에 신사동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방 라인에 이름을 붙였었는데, 그때는 이름을 짓는 일이 디자인이 다 끝난 다음에 하는 부수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네 가지를 하나씩 들여다보니, 오히려 이름이 그 가방의 존재 이유를 가장 짧게 요약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좋은 이름은 가방을 다 만들고 나서 억지로 붙이는 게 아니라, 그 가방을 왜 만들었는지 처음부터 명확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에르백은 켈리백을 캐주얼하게 바꾸고 싶다는 목적이 뚜렷했고, 24/24는 하루 종일 쓸 수 있는 가방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이름도 그만큼 직관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도 새로운 가방을 구상할 때 이름보다 먼저 이 가방을 왜 만드는지, 누가 어떤 상황에서 쓸 것인지를 먼저 명확히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