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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와 엡송, 가장 흔히 쓰이는 가죽
에르메스 가방을 이야기할 때 이름 못지않게 중요한 게 가죽 소재인데요. 26년간 가죽을 다뤄온 저에게도 에르메스가 쓰는 가죽들은 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오늘은 에르메스가 대표적으로 쓰는 가죽 종류들을 소재별 특징 위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토고 : 송아지 가죽 중에서도 에르메스 가방에 가장 흔하게 쓰이는 소재예요. 표면에 자잘한 주름 무늬가 있는 게 특징인데, 이 무늬는 인위적으로 찍은 게 아니라 가죽을 무두질할 때 표면을 일부러 도톡하게 살려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입니다(출처: 나무위키). 여기서 무두질이란 동물 가죽을 부패하지 않도록 화학적으로 처리해서 오래 쓸 수 있는 소재로 바꾸는 가공 과정을 말해요.
토고는 스크래치가 나도 흠집이 잘 티가 안 나는 편이라 관리가 쉬운 가죽으로 꼽힙니다. 제가 직접 토고 가죽과 비슷한 질감의 소가죽을 다뤄본 경험상, 이런 자잘한 그레인이 있는 가죽은 매끈한 가죽보다 오히려 재단할 때 결 방향을 맞추기가 더 까다롭습니다. 그레인, 그러니까 가죽 표면의 자연스러운 주름 결이 방향에 따라 빛을 다르게 반사하기 때문에, 한 가방 안에서도 조각마다 결 방향을 통일하지 않으면 이어붙였을 때 색이 미묘하게 달라 보이거든요.
엡송 : 토고와 자주 비교되는 가죽인데, 가장 큰 차이는 엠보싱 방식에 있습니다. 엠보싱이란 가죽 표면에 규칙적인 패턴을 눌러 찍어서 질감을 만드는 가공을 말하는데, 엡송은 이 엠보싱을 가죽의 겉면과 안쪽 면 모두에 새겨서 형태가 훨씬 또렷하고 각진 인상을 줍니다(출처: BagUSeek).
그래서 엡송으로 만든 가방은 힘을 줘도 모양이 잘 무너지지 않는 대신, 토고보다 유연성은 떨어지는 편이에요. 제 경험상 이렇게 양면에 엠보싱을 넣는 가죽은 원단 자체의 두께가 얇아도 구조적으로 힘을 잘 버텨서, 각진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가방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클레망스와 스위프트, 부드러움을 대표하는 가죽
클레망스 : 토고와 같은 송아지 가죽이지만, 주름 무늬가 토고보다 넓고 부드럽게 나타나는 게 특징이에요(출처: 나무위키). 무두질 과정에서 가죽에 기름 성분을 더 많이 먹이기 때문에 손으로 만졌을 때 훨씬 말랑말랑한 촉감을 줍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자리 부분이 갈라지거나 크랙이 생길 수 있는데, 여기서 크랙이란 가죽 표면에 미세한 실금이 생기는 현상을 말해요. 저는 클레망스처럼 기름을 많이 먹인 가죽을 다뤄볼 때마다, 부드러운 가죽일수록 봉제할 때 바늘땀 간격을 더 촘촘하게 잡아야 한다는 걸 느낍니다. 기름기가 많은 가죽은 시간이 지나면서 살짝 늘어나는데, 바늘땀 간격이 넓으면 그 늘어남을 못 버티고 이음새가 벌어지기 쉽거든요.
스위프트 : 매끄럽고 얇은 램스킨, 그러니까 어린 양의 가죽으로 만든 소재입니다. 원래는 걸리버라는 이름으로 쓰이다가 1999년에 단종됐고, 2005년에 스위프트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나왔는데, 이 이름은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출처: 힌드스타).
표면이 매끈해서 색을 아주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 원색이나 화려한 컬러의 가방일수록 스위프트 가죽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토고나 클레망스보다는 스크래치에 약한 편이에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저는 처음에 이 가죽 이름이 그냥 빠르다는 뜻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소설가의 이름이었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에르메스 가죽 종류의 최고봉, 바레니아와 이그조틱 스킨
바레니아 : 원래 말안장을 만들 때 쓰던 가죽이에요. 다른 가죽들과 다르게 표면에 인위적인 코팅이나 안료를 거의 입히지 않는 내추럴 가죽인데, 여기서 내추럴 가죽이란 가죽 본연의 숨구멍을 막지 않고 그대로 살려둔 가죽을 말합니다(출처: TILNOTE).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자의 손기름과 햇빛을 흡수해 색이 점점 짙어지고 광택이 도는데, 이런 변화를 파티나라고 부릅니다.
파티나란 가죽이 세월과 손길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얻는 고유한 색감과 윤기를 뜻하는 말이에요. 제가 직접 코팅을 거의 하지 않은 원단을 다뤄본 경험상, 이런 가죽은 작업 중에 조그만 얼룩도 바로 스며들기 때문에 재단하고 조립하는 내내 손을 훨씬 더 조심스럽게 써야 합니다.
이그조틱 스킨 : 소가죽이 아닌 특수 가죽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에르메스에서는 악어가죽, 오스트리치, 리자드 같은 소재를 씁니다. 오스트리치는 타조 가죽인데 자주 손이 닿으면 색이 점점 짙어지고, 반대로 햇빛에 오래 두면 색이 옅어지는 독특한 성질이 있어요(출처: 나무위키).
비나 습기에는 오히려 강해서 물티슈로 닦아도 괜찮은 편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그조틱 스킨은 일반 소가죽보다 원단 자체의 결이 훨씬 불규칙해서, 재단할 때 흠집이나 모공 자국을 피해서 패턴을 배치하는 데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 토고와 엡송 중 어떤 가죽이 더 튼튼한가요.
답변 : 둘 다 관리가 쉬운 편이지만, 형태를 유지하는 힘은 양면에 엠보싱이 들어간 엡송이 더 강하고, 스크래치가 덜 티 나는 쪽은 토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 바레니아 가죽은 왜 관리가 더 까다롭나요.
답변 : 코팅이 거의 없는 내추럴 가죽이라 얼룩이나 물기가 바로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고유한 파티나가 생겨서 오히려 매력으로 여겨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 화려한 색의 가방을 고를 때는 어떤 가죽이 좋나요.
답변 : 표면이 매끈해서 색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스위프트 가죽이 원색이나 비비드한 컬러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26년 동안 가죽을 만지고 다뤄오면서, 에르메스가 쓰는 가죽들을 이렇게 하나씩 정리해보니 느끼는 게 있습니다. 좋은 가죽은 결국 원단 자체의 성질을 얼마나 솔직하게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토고와 엡송은 튼튼함을, 클레망스와 스위프트는 부드러움을, 바레니아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쪽으로 각자의 개성을 살렸죠.
저도 예전에 신사동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죽을 직접 골라 써봤는데, 그때마다 느낀 건 좋은 가죽일수록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코팅을 두껍게 입히거나 인위적인 패턴을 많이 찍을수록 오히려 가죽 본연의 매력은 사라지더라고요. 제 경험상 에르메스 가죽들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두질 과정에서 가죽의 성질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가죽이 가장 잘하는 걸 살리는 방향으로 가공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가방을 디자인할 때 가죽을 고르는 기준을 디자인에 맞추기보다, 그 가죽이 가진 본연의 성질에 디자인을 맞추려고 합니다. 가죽의 결을 거스르지 않는 게 결국 더 오래가는 가방을 만드는 길이라는 걸,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확신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