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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탄이라는 소재와 라탄백의 역사
라탄은 말레이어 '로탄(rotan)'에서 이름을 따온 덩굴야자로,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형태지만 속이 비어 있지 않고 섬유질이 꽉 차 있는 게 특징입니다. 혼자 서 있지 못해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덩굴식물인데, 덩굴줄기의 굵기는 보통 2~5cm 정도이고 길이는 최대 수백 미터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주 서식지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열대 지역입니다.
이 식물이 오래전부터 공예 재료로 사랑받은 이유는 가공성 때문입니다. 일반 열대 교목보다 벌채와 운반이 쉽고, 가구 재료로 다듬기도 수월해서 동남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등나무 가구, 바구니, 지팡이, 직조 매트 등 다양한 수공예품을 만드는 데 널리 쓰여 왔습니다.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라탄백은 1950년대 처음 주목받았습니다. 전후 경제가 어려운 시기라 실용적인 소재가 각광받았고, 원래 시장용으로 쓰이던 바구니가 자연스럽게 외출용 가방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 흐름을 대중적인 아이콘으로 만든 인물이 배우 겸 가수 제인 버킨입니다. 1960년대 히피 무드를 대표하던 그녀는 원통형 라탄 바구니에 아이들 물건을 잔뜩 담아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드레스를 입은 자리에도 이 바구니를 들고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게 바로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라는 점입니다. 정작 제인 버킨 본인은 값비싼 버킨백보다 라탄 바구니를 더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2010년대 중후반, 알렉사 청 같은 패션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다시 유행하며 발렌시아가·로에베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도 라탄 소재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저도 26년 동안 가방을 만들면서 라탄을 소재로 다뤄본 적이 몇 번 있는데, 매번 느끼는 건 이게 '원단'이 아니라 '공예 재료'라는 점입니다. 패턴을 뜨고 재단해서 박음질하는 일반 원단과 달리, 라탄은 장인이 한 가닥 한 가닥 엮어서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같은 디자인이어도 짜는 사람의 손기술에 따라 완성도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대량생산이 유독 까다로운 소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라탄백 생산 라인을 검토했을 때, 숙련된 장인 수급이 원단 수급보다 더 큰 병목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라탄백의 특징과 장점
디자이너 입장에서 라탄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여름 느낌'이 나서만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자연스러운 통기성입니다. 줄기를 엮어 만드는 구조 자체가 틈을 만들기 때문에 공기가 잘 통합니다. 다만 메쉬처럼 정교하게 계산된 원단 조직이 아니라 수공예로 엮은 틈이라, 개체마다 조밀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두 번째는 의외의 가벼움입니다. 겉보기엔 두툼해서 무거워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는 구조라 실제로 들어보면 예상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세 번째는 형태 유지력입니다. 줄기 자체에 힘이 있어서 별도의 심지 보강 없이도 가방 형태가 잘 잡히는데, 이 점이 패브릭이나 가죽 가방과 가장 다른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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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라탄을 여름 전용 소재로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사실 라탄 자체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보온성이 있어 사계절 소재로도 쓰입니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는 유독 계절 아이템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건 소재의 한계라기보다는 유통과 마케팅의 관습에 가깝다고 저는 봅니다. 실제로 유럽 브랜드들의 라탄 라인업을 보면 봄가을 컬렉션에도 자연스럽게 라탄 소재가 섞여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라탄을 다룰 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설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 원단은 패턴을 그려서 재단하고 봉제하지만, 라탄은 엮는 틀 자체가 곧 디자인입니다. 몸통의 곡선, 손잡이의 두께, 바닥의 안정감까지 전부 엮는 방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도면 하나 수정하는 데도 원단 가방보다 훨씬 오랜 소통과 시행착오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손잡이 연결부는 라탄백에서 가장 하중을 많이 받는 부위인데, 여기 엮음이 느슨하면 몇 달 안 가 헐거워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그래서 잘 만든 라탄백일수록 손잡이 연결부만큼은 엮음 밀도를 다른 부위보다 높게 잡거나, 안쪽에 별도 보강선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탄백 관리법과 주의점
천연 소재이기 때문에 화학섬유나 가죽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가장 큰 적은 습기입니다. 천연 라탄 제품은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하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벌레가 번식할 우려가 있습니다. 장마철이나 비 오는 날 사용 후에는 반드시 완전히 건조한 상태로 보관해야 합니다. 직사광선도 피해야 하는 요소입니다. 장시간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제품이 변색되거나 균열이 생길 수 있어, 그늘지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염이 생겼을 때는 물에 젖은 상태로 오래 방치하기보다, 살짝 적신 부드러운 천으로 바로 닦아내고 그늘에서 말리는 방식이 소재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엮인 틈새로는 먼지가 쉽게 쌓이기 때문에, 보관 중에도 주기적으로 부드러운 솔로 가볍게 털어주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무거운 물건을 넣을 때는 특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라탄은 형태 유지력은 좋지만 접착이나 봉제가 아니라 '엮은' 구조이기 때문에, 무거운 물건을 반복적으로 넣으면 엮인 부분이 벌어지거나 끊어질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무거운 물병보다는 가벼운 소지품 위주로 사용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시즌이 끝나고 오래 보관해야 한다면, 가방 안에 신문지나 부직포 등을 채워 형태를 잡아준 상태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는 것이 다음 시즌에도 처음 모양 그대로 쓸 수 있는 방법입니다.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을 하나 더 보태자면, 라탄백은 초기 몇 번의 사용이 소재 수명을 크게 좌우합니다. 처음 몇 번 비를 맞거나 습한 환경에 노출된 라탄은 줄기 표면의 결이 미세하게 일어나면서 그 이후로 계속 잔가시처럼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라탄백을 새로 받으면 초반에 마른 천으로 표면을 여러 번 문질러 결을 정리해주고, 완전히 건조한 날에만 사용을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작은 습관 하나가 라탄백을 1~2년 쓰고 버리느냐, 5년 넘게 색만 예쁘게 바래며 오래 쓰느냐를 가르는 차이가 됩니다. 천연 소재는 관리하는 만큼 정직하게 그 세월이 쌓이는 소재라, 조금 번거롭더라도 이런 습관을 들이시길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