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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고처리와 브랜드 정리

    재고가 쌓이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손을 못 댔던 이유

    매장을 몇 년 하다 보면 시즌마다 새 상품을 들이는 게 그냥 당연한 일상이 되는데, 문제는 그 사이사이 안 팔리고 남는 재고가 조용히 쌓여간다는 거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창고 한쪽에 몰아두고 다음 시즌에 어떻게든 소진하면 되겠지, 이 정도로 넘겼어요. 근데 백화점 팝업을 준비하면서 매장 회전율이랑 브랜드 이미지에 훨씬 예민해졌고, 그제야 창고에 쌓인 재고가 단순히 공간 문제가 아니라 자금이 묶여 있는 거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특히 초기에 브랜드 방향을 이것저것 시험하면서 만들었던 라인들, 지금 보면 콘셉트가 애매하거나 시즌이 완전히 지나버린 상품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걸 정리 안 하고서는 새 브랜드 이미지로 팝업에 나갈 수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근데 막상 정리를 시작하려니 마음이 쉽지 않았어요. 하나하나가 제가 처음 사업 시작할 때 고민하고 시행착오 겪었던 흔적이라서, 그냥 안 팔리는 재고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헐값에 처분한다는 게 그동안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계속 미루게 됐고요. 근데 재고를 계속 안고 가면 보관 비용도 늘어나고 새 상품 자금 회전도 막히는 게 현실이라서, 결국 정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붙잡고 있던 걸 사업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었고, 사실 이 결심하기까지가 실제 처분 작업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그 미룸의 시간 동안에도 임대료랑 관리비는 꾸준히 나가고 있었고, 안 팔리는 재고가 차지하는 공간만큼 새 상품 놓을 자리도 줄어들고 있었던 거죠.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기까지 유독 오래 걸렸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실패를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습니다.

    잘 안 팔린 상품을 정리하는 게 마치 그 상품을 기획했던 제 판단이 틀렸다고 스스로 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졌거든요.

    실제로 정리하면서 부딪힌 현실적인 문제들

    결심하고 나서도 실제 처분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제일 먼저 부딪힌 건 가격 책정이었어요.

    너무 낮게 풀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갈까 걱정됐고, 그렇다고 어중간한 할인율로는 재고가 제대로 안 빠질 것 같아서 며칠 동안 가격표만 붙였다 뗐다 했습니다.

     

    결국 정가 판매 채널이랑 완전히 분리된 아울렛이나 땡처리 전용 채널을 따로 찾기로 했는데, 이 채널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어요. 온라인 도매 플랫폼 몇 군데에 입점 문의를 넣었는데 최소 물량이나 정산 조건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았고, 오프라인 땡처리 업체와는 매입 단가 협상에서 이견이 커서 몇 번이나 무산됐습니다.

     

    재고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상태 다시 확인하고 채널별로 나눠서 발송하는 실무 작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직원들이랑 며칠에 걸쳐서 창고를 거의 통째로 뒤집어엎다시피 하면서 정리했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진 제품들도 발견돼서 폐기해야 하는 물량까지 나왔고, 그때 마음이 좀 무거웠어요.

     

    브랜드를 정리한다는 게 단순히 물건 파는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랑 스토리까지 같이 정리하는 일이라는 걸 이 과정에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건 채널마다 요구하는 서류랑 절차가 다 제각각이라는 거였어요. 어떤 곳은 상품 상세 사진이랑 원가 자료를 따로 요청했고, 어떤 곳은 계약서 양식부터 새로 작성해야 했습니다.

     

    매장 운영이랑 병행하면서 이걸 다 처리하려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고요. 협상하다가 감정이 상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상품 가치랑 매입 측이 제시하는 단가 사이 간극이 클 때마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싶은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창고가 한결 가벼워진 걸 보면서 후련함이랑 묘한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눈에 안 보이게 발목 잡고 있던 자금이랑 공간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새 시즌 상품이랑 팝업 준비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이 경험으로 가장 크게 배운 건, 재고랑 브랜드 정리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한 번에 몰아서 처리하려니 감정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훨씬 힘든 과정이 되어버렸거든요.

     

    지금은 시즌 끝날 때마다 남는 재고를 바로 분류하고, 소진 가능한 채널이랑 처분해야 할 물량을 미리 구분해두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라인을 새로 만들 때도 나중에 방향이 바뀌었을 때 어떻게 정리할지를 미리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도 배웠고요. 재고 처분 관련해서는 중소기업 유통센터나 지역 소상공인 지원기관에서 운영하는 재고 소진 연계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는데, 미리 알았으면 조금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비슷한 고민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재고를 감정적으로 붙잡기보다는 사업 흐름을 위한 순환 과정 정도로 받아들이시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하실 거예요. 정리를 마친 뒤로는 매장 안 진열도 훨씬 명확해졌습니다.

     

    예전엔 이것저것 다 보여주려다 보니 콘셉트가 흐려지는 느낌이었는데, 브랜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만 남기고 나니 그때 당시 손님들 반응도 확실히 더 좋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팝업 준비하면서도 예전 같으면 남는 재고 걱정 때문에 신경이 분산됐을 텐데, 그때는 온전히 새 구성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결국 정리라는 게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 경험으로 확실히 느꼈습니다.

    참고 링크

    돌아보면 재고랑 브랜드를 정리하는 과정은 그냥 창고 청소가 아니라 제 사업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워서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 보내니까 오히려 앞으로 뭐에 집중해야 할지가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사실 지금은 그 매장도 완전히 정리하고 ODM·OEM 사업만 하고 있습니다. 재고를 아예 안 떠안아도 되니까 마음은 확실히 편해졌는데,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직접 매장에서 손님들 만나고 진열하고, 그렇게 브랜드를 하나씩 채워가던 시간들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 재고랑 브랜드를 정리하면서 배운 것들이, 지금 제조 쪽에 집중하는 데도 여전히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