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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가장 크게 달라진 업계 풍경
후배 디자이너가 얼마 전에 물었습니다. "선배님 처음 일 시작했을 때랑 지금, 뭐가 제일 다른 거 같으세요?" 막상 질문을 받고 나니 너무 많은 장면이 떠올라서 바로 대답을 못 했습니다.
26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 사이 이 업계는 생각보다 훨씬 뿌리부터 바뀌었더라고요. 오늘은 그 변화들 중에서도 제가 가장 크게 체감한 세 가지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신제품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거의 전적으로 오프라인 매장 진열과 백화점 바잉 결과에 달려 있었습니다. 좋은 매대 자리를 받느냐, 바잉 담당자의 눈에 드느냐가 그 시즌 매출을 결정하는 핵심이었고, 저희도 모든 신경을 그쪽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풍경입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패션 업계 전체가 플랫폼 수수료 부담과 데이터 주권 문제 때문에 너도나도 자사몰 구축에 다시 뛰어들고 있다고 합니다(비즈워치).
저는 이 흐름을 그냥 기사로만 보는 게 아니라 실제 발주량 변화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오프라인 매대를 기준으로 생산량을 잡았다면, 지금은 자사몰이나 라이브커머스 반응을 먼저 보고 2차, 3차 생산량을 조절하는 구조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낯설고 불편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매장 반응을 보던 사람 입장에서, 화면 속 숫자만으로 생산을 결정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쪽이 더 빠르고 정직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바잉 담당자 한 사람의 취향에 의존하던 예전 방식보다, 수많은 소비자의 실제 클릭과 구매가 쌓인 데이터가 더 솔직한 신호를 준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샘플 개발 방식도 함께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시즌 하나당 정해진 수의 신상품을 한꺼번에 개발해서 매장에 동시 출시하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자사몰에서 소규모로 먼저 테스트해보고 반응이 좋은 디자인만 추가 생산하는 방식이 훨씬 일반적입니다.
저는 이 방식이 재고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만큼 개발 주기가 짧아지고 테스트해야 할 디자인 수가 많아지면서, 디자이너와 샘플실의 업무 강도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높아진 느낌입니다. 유통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면서 그 뒤편의 업무 구조까지 함께 재편되는 걸 가까이서 지켜본 셈입니다.
생산 기지가 흔들리고 다시 재편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두 번째로 크게 체감한 변화는 생산 기지 자체의 재편입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중국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처럼 여겨졌습니다. 인건비도 낮고 설비도 빠르게 갖춰져 있어서, 대부분의 브랜드가 별다른 고민 없이 중국으로 생산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업종에 따라 정반대의 전략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뷰티 업계는 탈중국 흐름이 뚜렷한 반면, 패션 업계는 오히려 중국 시장과 생산망에 재도전하는 엇갈린 전략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아시아경제). 저는 이 엇갈림이 꽤 흥미롭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저희 업계 안에서도 비슷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인건비 상승과 관세 이슈 때문에 동남아시아 쪽으로 생산지를 옮겨보자는 시도가 여러 브랜드에서 있었지만, 막상 가죽 가공이나 정교한 봉제가 필요한 고급 라인은 여전히 중국 공장의 숙련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때 베트남 쪽 공장과 몇 차례 샘플을 진행해봤는데, 단순한 캔버스 라인은 품질이 꽤 괜찮았지만 복잡한 하드웨어 부착이나 세밀한 스티치가 들어가는 제품은 여러 번 반려하며 시간을 많이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저는 품목에 따라 생산지를 나누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이렇게 한 가지 정답 없이 계속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예전에는 없었던 풍경입니다.
예전에는 한 공장과 오래 거래하면서 그 공장의 숙련도를 믿고 맡기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환율과 관세, 인건비가 수시로 바뀌다 보니 한 곳에만 의존하는 게 오히려 위험한 선택이 됐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라인마다 대안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공장을 미리 확보해두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는데, 이게 단순히 비용을 비교하는 문제가 아니라 품질 기준을 서로 다른 공장에 똑같이 이해시키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든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공장을 옮기거나 추가할 때마다 처음 몇 시즌은 반드시 불량률이 올라가는 적응 기간을 거쳐야 했는데, 이런 적응 비용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요즘 생산 구조의 가장 큰 숨은 부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10년 전만 해도 동남아시아 공장들은 솔직히 기본적인 재단이나 단순 봉제 정도만 겨우 따라오는 수준이었고, 조금만 복잡한 디테일이 들어가면 샘플부터 몇 번씩 반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공장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올라왔습니다.
설비도 꽤 갖춰졌고, 숙련된 인력도 많이 늘어서 이제는 웬만한 디테일은 중국 공장 못지않게 소화해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다만 이 지역을 활용할 때 꼭 챙겨야 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물류입니다. 완제품이 항구를 거쳐 국내까지 들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중국보다 훨씬 길고, 선적 스케줄 자체도 변수가 많아서 중국 기준으로 짜던 일정표를 그대로 적용하면 반드시 입고가 늦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동남아시아 공장과 일할 때는 발주와 생산 착수 시점을 중국보다 최소 두세 주 더 앞당겨 잡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생산 실력만 보고 일정을 똑같이 짰다가 물류 구간에서 시간을 다 잡아먹혀 버린 경험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아예 생산지별로 별도의 역산 캘린더를 만들어두고 관리합니다.
소재 트렌드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일 줄 몰랐다
세 번째는 소재 쪽 변화입니다. 제가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가죽과 캔버스 두 가지가 거의 전부였는데, 지금은 선택지가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비건 레더 쪽 성장세가 눈에 띄는데, 관련 업계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비건 레더 시장이 2030년까지 1394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한국섬유신문).
처음 이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지켜보니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소재 구성 자체를 다변화하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가방 스타일 자체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포멀한 핸드백 중심이던 시장이 캐주얼 가방 쪽으로 크게 옮겨가면서, 관련 보도에서도 캐주얼 가방이 초대박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어패럴뉴스). 저는 이런 흐름을 보면서 제가 처음 배웠던 소재와 실루엣 기준이 더 이상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매 시즌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6년 전에는 가죽의 등급과 무두질 방식만 깊이 알면 됐는데, 지금은 식물성 소재의 성분 구성까지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빠르게 소재 지식을 계속 갈아타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소재 발주 방식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예전에는 거래하던 몇몇 태너리와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큰 고민 없이 발주했는데, 지금은 매 시즌 새로운 대체 소재 업체들이 샘플을 들고 찾아오고, 그중 어떤 게 정말 내구성이 있는 소재인지 제가 직접 걸러내야 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신소재 샘플을 받으면 저는 꼭 몇 주씩 직접 들고 다니거나 접었다 펴보면서 내구성을 확인하는데, 화려한 홍보 문구와 실제 물성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배운 사실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정리하고 보니, 결국 이 업계에서 변하지 않은 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통도, 생산지도, 소재도 모두 제가 처음 배운 것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는데, 결국 소비자가 손에 쥐었을 때 만족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변화의 속도에 맞춰 계속 배우면서, 그 기본 원칙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