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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년 차 가방 디자이너가 시장에 나가는 이유
    신설동 자재 시장

                                                                                   

     

    며칠 전에도 동대문종합시장과 신설동 부자재 상가를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26년째 가방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있지만, 시장에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원단과 부자재를 발견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단의 조직과 가공 방식은 다양해지고, 지퍼·버클·장식 같은 부자재도 계속 새롭게 나옵니다. 몇 달만 시장에 가지 않아도 매대의 구성이 달라져 있을 정도입니다.

     

    20대에 처음 이 업계에 들어왔을 때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말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경험이 없다는 것을 들킬까 봐 일단 알아들은 척하고, 작업이 끝난 뒤 다른 분에게 조용히 다시 물어본 적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바로 묻습니다. 오래 일했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이 생산 현장에서는 더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1. 현장의 언어를 배우고 나서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가방 생산 현장에 들어갔을 때 가장 당황했던 것은 작업자분들이 사용하는 현장 용어였습니다. 학교나 책에서 접했던 표현과 실제 샘플실과 공장에서 사용하는 말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샘플 작업을 하다 보면 패턴사님과 샘플사분들이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처음에는 그 대화를 모두 알아듣지 못했지만, 모른다고 말하면 경험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고개부터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면 결국 샘플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형태와 패턴사님이 이해한 형태가 달라 샘플을 다시 만들기도 했고, 작은 마감 하나가 다르게 표현돼 전체 디자인의 인상이 달라진 적도 있었습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뒤부터는 모르는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실제 가방의 해당 부위를 가리키며 정확히 어느 부분을 말하는지 물었고, 완성된 샘플을 보면서 구조와 명칭을 하나씩 익혔습니다.

     

    현장 언어를 알아듣게 되자 샘플사분들과의 대화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원하는 형태와 마감 방식을 짧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서로 다르게 이해해 샘플을 다시 만드는 일도 줄었습니다.

     

    생산 현장에서 용어를 안다는 것은 전문적인 단어를 많이 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작업 시간을 줄이고, 의사소통의 오류를 막고, 생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본이었습니다.

     

    가방의 부위별 명칭과 실제 작업지시 방법은 이전 글에서 자세히 정리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개별 용어의 뜻보다, 26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 새롭게 배워야 했던 이유입니다.

    가방 제작 현장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궁금하다면 이전에 작성한 가방 제작 현장 용어 정리 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 이름이 뭐였지?" 가방 부위별 현장 용어 완벽 가이드

    가방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다 보면 머릿속에 구상한 멋진 아이디어를 실제 실물 제품으로 구현하는 기대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학원이나 학교 과정, 혹은 이론 서적만 공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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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대문과 신설동을 모두 돌아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26년 동안 같은 일을 했으면 이제 시장에 자주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직접 확인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이 보입니다.

    같은 나일론 원단이라도 조직과 두께, 광택, 코팅 방식에 따라 완성된 가방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진에서는 비슷해 보여도 직접 만져보면 부드러움과 탄력이 다르고, 빛의 방향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원단의 색상만 보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손으로 원단을 구겼다가 놓아 주름이 얼마나 남는지 확인하고, 가볍게 당겨보며 조직의 밀도와 힘을 살펴봅니다. 가방으로 만들었을 때 형태를 잘 잡아줄 수 있는지도 생각합니다.

     

    동대문종합시장에 가면 원단 매장뿐 아니라 5층도 자세히 돌아봅니다. 5층에는 은 액세서리를 비롯해 목걸이와 팔찌 등에 사용하는 각종 장식 부자재가 많습니다.

     

    원래 가방만을 위해 만들어진 부자재는 아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가방의 참 장식이나 포인트 장식으로 응용할 만한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작은 장식을 지퍼 풀러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체인이나 가죽 끈과 조합해 새로운 가방 참 장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액세서리용 장식을 가방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방의 크기와 디자인에 맞게 변형하고, 연결 방법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장식 하나만 잘 사용해도 평범한 가방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을 기획할 때 동대문 5층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반면 신설동은 가방 제작에 직접 필요한 부자재를 전문적으로 살펴보기 좋은 곳입니다. 지퍼·버클·D링·개고리·체인·보강재 등 가방 생산에 사용하는 다양한 부자재가 모여 있습니다.

     

    동대문 5층이 새로운 포인트 장식과 참장식 아이디어를 얻는 곳이라면, 신설동은 가방의 구조와 실제 생산에 필요한 전문 부자재를 찾는 곳에 가깝습니다.

     

    저는 디자인에 변화를 줄 장식을 찾을 때는 동대문 5층을 자세히 살펴보고, 샘플 제작과 생산에 필요한 가방 전문 부자재를 확인할 때는 신설동으로 갑니다. 두 시장은 취급하는 품목과 방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한 곳만 둘러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장식을 발견했다고 바로 제품에 적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방에 달았을 때 너무 무겁지 않은지, 옷에 걸리거나 원단을 손상할 위험은 없는지, 반복적으로 움직여도 연결 부위가 쉽게 끊어지지 않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샘플 한두 개를 만들 수 있는 수량과 대량생산에 필요한 수량은 다릅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생산에 필요한 수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없다면 실제 제품에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색상과 도금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시장조사는 단순히 필요한 부자재를 구매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음 디자인에 사용할 소재를 찾고, 실제 생산 가능성까지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액세서리 하나가 새로운 가방 디자인의 출발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

    3. 오래된 경험이 고정관념이 되지 않도록 계속 배웁니다

    신입 디자이너가 최근 유행하는 소재나 새로운 브랜드를 알려줄 때가 있습니다. 대표가 신입에게 배운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브랜드와 온라인 트렌드를 빠르게 접합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색상 조합이나 소재의 사용 방법을 제안할 때도 있습니다.

     

    반면 저는 오랜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그 디자인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원가와 내구성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신입 디자이너의 새로운 시각과 저의 생산 경험이 함께 작동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다만 새로운 소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곧바로 제품에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시장에 나가 실물을 확인하고, 샘플 제작 가능성과 최소 주문수량, 납기, 불량 가능성도 함께 검토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원단도 봉제할 때 바늘구멍이 크게 남거나 재단면이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장식이 세련돼 보여도 지나치게 무겁거나, 공급이 불안정하거나, 불량률이 높으면 대량생산 제품에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예전에는 사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소재가 가공 기술의 발전으로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만 믿고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좋은 선택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오래된 경험은 큰 장점이지만 때로는 고정관념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사용해 봤는데 안 됐다”라고 단정하면 새롭게 개선된 소재와 생산 방법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받으면 경험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직접 확인하려고 합니다. 시장에서 실물을 보고 필요한 경우에는 샘플을 만든 뒤 판단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시장에 나가면 모르는 것이 보입니다. 그때마다 다시 묻고, 만져보고, 비교하고, 필요하면 샘플을 만들어봅니다. 아마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 배움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 일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 조금 더 잘 알게 됐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새로운 원단이나 장식을 발견하면 어떤 가방에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 궁금함과 설렘이 남아 있는 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시장에 나갈 것 같습니다.